안녕, 대통령님

-노무현 대통령 서거 2주기, 언론 상실의 시대-




<국정홍보처의 취재 선진화 방안 시행 논란에 대한 행정법적 논의>
2007년 10월 30일 제출 과제문



1. 사건 개요

참여정부는 2003년에 이미 청와대 기자실을 폐쇄하고 브리핑 체제를 도입한 바 있으며, 국정홍보처는 올해 3월22일 `해외 및 국내 기자실 운영실태' 조사결과를 발표했고 5월22일 국무회의에서 부처별로 설치돼있던 브리핑실과 기사송고실을 정부중앙청사, 과천청사 및 대전청사 등 3곳에 설치되는 합동브리핑센터로 통합 운영키로 하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이후 언론사와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위 방안의 시행으로 인해 오히려 언론의 접근을 막을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하여 잇따라 비판했으며, 이에 따라 9월14일에는 한덕수 총리와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공무원 취재시 공보관실과 사전 협의' 등 독소조항으로 지적돼온 내용을 대폭 삭제키로 하는 보완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기자들은 개별 부처의 기존 기사송고실이 아닌, 정부청사에 신설된 브리핑룸을 이용해야 하며, 공무원과 대면 인터뷰를 하려면 사전 약속을 잡아야 하고, 기자출입증이 아닌 방문허가증을 출입시에 받아야 한다. 또한 정부의 브리핑은 브리핑룸의 진행상황이 인터넷으로 중계되는 전자브리핑 시스템이 도입되며, 기자들은 전자브리핑 사이트에 회원가입한 후 정부로부터 보도자료 등을 받아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부처의 기사송고실을 폐쇄하고 합동브리핑 체제로 변경하는 것을 고수하는 정부 방침에 대해 기존의 언론사와 기자들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라고 반발하였으며, 정부가 10월 11일 각 부처 기사송고실의 인터넷회선을 차단하고 문을 잠그자 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기자들은 청사 복도 바닥에 노트북을 펴고 앉아 기사를 작성, 무선 인터넷으로 송고하기도 했으며 현재까지도 위와 같은 '취재 선진화 방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금, 언론을 탄압하자 이거란 말인가요?



이 글을 읽을 다른 분들이, 기억할까 모르겠습니다. 2007년 하반기, 언론계가 대대적으로 보도한 이슈중에 참여정부의 '취재선진화 방안' 이 있었다는 것을요. 말이 '선진화' 지, 사실상 언론 탄압과 취재 제한이나 다름없다며 언론, 특히 한국에서 상위 구독률을 차지하고 있는 몇 몇 신문사들이 대대적으로 비판(?)의 기사를 쏟아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방금 위에서 인용한 글은, 이 사건을 소재로 준비하고 발표했던, 당시 대학생이던 - 제 강의 과제 레포트의 서문이랍니다.

이 사건을 두고 사실 관계를 잘 파악하지 못한 단계에서의 시민들 - 그러니까, 신문의 논조에 무조건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청와대와 참여정부의 정책에 비판 또는 지지를 할 수 있던 사람들 말입니다. 그 중엔 저도 포함됩니다- 생각이야, 처음에는 대부분 "드디어...?" 아니었을까요. 당신께서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 당선되고 나서 몇 몇 언론들의 지독한 공격에 시달리고 있는 걸 진작에 간파하고 있었던 시민들의 시선에서는,  그  '취재 선진화 방안' 이라면서 기존 기자실을 폐쇄하는 것이 "이제 언론에 대해, 정부 권력을 이용하여  반격을 하는 건가?" 라고 생각할 만도 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잘 모르는 단계' 에서 그렇게 오해할 수 있었다는 거죠.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언론의 반발이 이 정도였기 때문이에요. 아니,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이 보다 훨씬 더 많은 당시의 기사들이 쌓여있습니다, 지금도요.






그런데, 저 뿐 아니라 이 과제를 준비하던 거의 모든 학생들은, 일방적인 언론 기사만 수집하는 게 아니라 '정확히 뭐가 어떻게 바뀌는지' 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정부와 언론 양 쪽의 말을 모두 듣기 시작하면서 - 제도의 불완전함이나 성급한 조치를 비판하는 것과 별개로, ' 언론 탄압' 까지 운운하는 것은 넌센스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결국에는 새로 바뀐 제도로 인해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되느냐, 정부의 정보 은폐 수단이 되느냐가 문제 였잖아요? 근데 그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기사, 그리고 당시 정부 보도자료로 배포되었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시행 전, 후'를 정리한 아래의 표가 잘 말해주고 있네요. 그리고 언론과 시민단체들의 주장을 수용하여 정책을 보완한 점이 눈에 띕니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오해와 진실 (1) 
 (2007.05.22 대한민국정책포털 공감코리아)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오해와 진실 (2)   (2007.05.25 대한민국정책포털 공감코리아)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법적 하자 없다  (2007.06.03 대한민국정책포털 공감코리아)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헌소 청구, 법적 타당성 없다  (2007.07.11 대한민국정책포털 공감코리아)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언론-시민단체 요구 수용 (2007.09. 14 대한민국정책포털 공감코리아)





 (2007년 당시 참여정부의 보도자료 발췌)



그래서 전 이렇게 과제를 마무리 했었답니다.


4. 결론

기자실 체제를 폐지하고 브리핑체제로 전환하는 논란은 지난 2003년 청와대 기자실을 폐쇄하고 브리핑을 정례화 한 뒤로 두 번째이다. 그런데 기자들이나 언론사들이 주장하는 '언론의 탄압' 과 '국민의 알 권리 침해' 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지금까지 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국정홍보처에 따르면, 공무원의 취재시 사전약속을 정하는 것이 결코 허가제가 아니며 오히려  공무원의 협조 의무를 명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언론은 이번 정책에 대해서, 각 부처 기자실에 상주하지 못하고 통합브리핑실에서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 것이 어떻게 정부에의 취재접근권의 박탈로 이어질 수 있는지 국민들에게 합리적인 논거를 제시해야 하지만,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를 비롯한 거의 모든 대부분의 언론은 정부의 일방적인 기자실 폐쇄로 인해 청사 바닥에 노트북을 펴고 앉은 기자들의 사진과 사건일지 등만을 자세히 보도하며 언론 탄압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미 보도자료 배포와 기자회견이 일반화된 취재 풍토와 초고속인터넷으로 가능해진 즉각적인 기사 송고 시스템에서, 기자가 각 부처로 출퇴근하며 상시로 부처 사무실을 드나들어야 하는 명분은 언론 개혁의 필요성에 비해서는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오히려, 언론사의 불편보다는 국정홍보처가 모든 부처의 브리핑을 주관하는 시스템이 자칫 (실질적으로) 각 부처의 자율적인 행정과 정책 홍보를 제한할 가능성에 대한 검증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가 일방적인 밀어붙이기 식으로 위와 같은 정책을 추진한 것은 문제가 있으나, 그동안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볼 때 위 제도 자체는 긍정적인 면이 많다고 보여지며, 추후에 나타나는 부작용이 지적되었을 때 제도의 재개혁을 고려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어떻게 되었는지도, 기억하시죠? 헌법소원까지 올라갔던 이 정책, 즉 총리훈령은 - 지난 2008년 12월 26일, '각하' 되었습니다. 이미 새 정부가 폐기하고 기존 기자실 체제로 돌아갔기 때문에, 언론과 국민의 권리가 현재 침해되고 있다고 볼 수 없고 그러므로 판단할 실익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이 때 까지도 언론들은 무척, 아주 많이 참여정부에 화가 나 있었나 봅니다. 헌법재판소 결정 요지를 요약한 내용이 대부분인 기사의 제목이 이렇더군요.




대통령님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도), 마음 아프시겠지만, 스크롤을 올려서 제가 지금까지 인용한 기사 링크를 한 번 더 봐주시겠어요? 그럼  두 가지를 알 수 있죠. 첫째로, 참여정부는 언론의 비판에 대하여 다시 해명 또는 반박하는 기사를 냈을 뿐 - 기사 자체를 삭제하라거나, 기자들을 취재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서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공감코리아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오해와 진실 (1)  이란 기사가 등재된 날은 2007년 5월 22일입니다. 그런데 언론의 반발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그래요. 제가 인용한 기사 옆의 날짜들을 다시 보면 아시겠지만,  2007년 8월 부터 10월, 그리고 헌재 각하된 2008년 12월까지입니다. 그리고 저 기사들 중에서, 공감코리아가 설명한 내용에 대해 제대로 반박한 기사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분명히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나서, 기자들의 반발이 시작된 겁니다. 그리고 이들의 기사는 그냥, 정부가 기자실을 폐쇄했다, 우리는 청사 바닥에 앉아 노트북을 펴고 기사를 올리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한다....가 전부였습니다. 정부에서 몇 달 전에 진작에 설명을 했지만, 그 후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에 대해 정확히 다룬 언론사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제서야 당신께 드리는 인사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늘, 비 내리는 봉하마을은 당신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습니다. 덕수궁 앞에서는 당신의 분향소가 차려져 많은 이들이 헌화했습니다. 2년 전 떠난 당신을 그리워하며.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당신 이외에도, '정적'으로 분류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정부(사법부도 3권 '분립' 정부기관 중 하나니까요)에 불려가 지금까지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거의 180도로 뒤집어진 상황은 다름 아닌 언론입니다. 2007년 당시에는 기자실 페쇄에 발끈했던 언론들은 이제 본격적인 '검열'의 시대에 접어들었나 봅니다. 많은 기자들과 시사교양 PD들은 오늘도 '징계'의 위협 속에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투쟁'을 걱정하고 있다고 하구요. KBS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보도를 낸게 언제이던가...싶습니다. 적어도 당신의 집권기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일입니다. 당신이 아직 이 땅에서 살고 있었을 때, 역사에 길이 남을 촛불 '집회' 로 인해 헌법상 '집회 결사의 자유'가 어떻게 최고조로 발현될 수 있는지 전 경험할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불과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다르네요.



저는 선거법상 투표권의 연령 제한으로, 당신을 지지해서 투표할 수 있었던 적도 없고, 당신께서 누구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다만 대선 중 '신드롬' 급으로 회자되던 당신의 인기와, 행정수도 공약으로 충청도 표심을 공략한 점이 조금 경솔해보이면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행정수도 이전 취지에야 공감했지만, 섣불리 했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될 날림 공약 같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쓴 소리지만.... 당신의 시대가 그렇게 많은 것을 이뤘다거나 과거를 청산했다고 평가 받기는 어렵습니다. 당신께서 퇴임 이후에 하신 말씀이나, 소신과는 다른 상황들이 전개된 것을 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생들은 등록금 문제를 넘어서 본격적으로 '빈곤한 젊은이들' 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제 나이 또래를 규정하는 또 다른 이름은 '88만원 세대' 입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의 근원이 된 한미 FTA가 당신의 집권기에 추진되기 시작한 것도 사실입니다.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시작된 로스쿨 제도도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참여정부에서도 폭력적 시위 진압 문제가 야기되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이미 일상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말씀하셨지요. '이제 경제(재벌) 권력이 정치 권력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고. 맞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본격적인 도입이 IMF 구제금융을 탈출하기 위해 채택(또는 강요) 되면서, '진보'를 원했다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도 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겁니다. 나중에라도요.




하지만, 그래서 저는 당신의 역할에 기대를 했었습니다. 재임 시절 온갖 언론의 공격 속에서, 그리고 안팏의 딜레마 속에서 본인이 생각하신 것보다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게 훨씬 적었다면, 적어도 퇴임 이후부터는 '좋은 전직대통령' 으로 활동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요. 봉하마을에서 소탈하게 지내면서 한가롭게 살다가도, 때로는 시민들에게 그리고 후세의 정치인들에게 - 대통령 시절 추진하려고 했으나 할 수 없었던 것들, 대통령이기에 고민하고 다른 이들에게 말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해 주길 바랐던거죠. 만약 본인의 소신과 판이한 정치적 선택을 해야 했다면, 후대에는 그런 일이 조금이라도 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한 것입니다.



2년전 이맘 때,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캠퍼스 내 분향소에 꽃을 놓고, 당신에 대한 추모 기사와 시민의 추모광고를 붙이면서 저 역시 무척 슬펐습니다. 굳이 지금 와서 이야기하지 않아도, 당신께서 막다른 절벽으로 몰리게 된 이유가 뭔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편지글을 쓰는 지금도 문득 문득 당신의 선택이 최선이었을까, 그건 아니야, 아니야 당신의 입장에서는 최선이었을거야...라고 중얼거리게 됩니다. 그래도, 아니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대한민국의 국민들과, 당신의 가족분들은 -  손녀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시골길을 달리는 전직 대통령의 소탈한 미소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이제 당신께 바라는 점도, 원망하는 점도 없습니다 - 오히려 현직에 계셨을 때 종종 비판적이던 기억이 나지만 - 이제 전 더이상 대학생도 아닙니다. 그리고, 아시지요? 세상에는, 특히 대한민국에는 당신과 비슷하거나 다른 이유로 스스로 운명을 달리한 분들이 많다는 것을요.  우리나라에 이렇게나 많이 경제적 고통, 또는 그 외의 가족과 사회와의 문제로 인한 자살 사망자가 발생하는구나, 라고 전 당신과 작별한 이후에야 깨달았답니다. 당신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그 분들과 당신 모두가 이제 어깨에 짊어진 짐을 털고 편히 쉬시길 바랄 뿐입니다. 수만가지 이유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점 점 더 좋아지고 인권과 환경이 개선될 거라는 꿈을 저는, 그리고 많은 시민들은 여전히 가지고 있답니다. 언젠가 우리 세대가 이룰 그 날에, 약속해주실 수 있지요? 봉하마을을 찾아간 시민들과 기념촬영을 하신 때처럼, 키를 낮추고 엉거주춤 서서 씨익 웃어주시겠다고.





당신과 작별한 지 2년이 흐른 오늘에, 이 글로써 당신을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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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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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MBC 파업, 신념을 위한 시간

    Tracked from 글과생각이숨쉬는다정스페이스 2011/05/22 17:27  삭제

    그동안 글 쓸 엄두도 못내고 바쁘게 살다가, MBC 파업과 제 근황을 함께 써내려가봤습니다. 마지막 경험담은 예전에 김진혁PD님 블로그 에 댓글로 단 내용이기도 합니다^-^ MBC 파업, 신념을 위한 시간 다정 (http://dajungspace.com) 작년 이맘때까지만 해도 난, 서점의 <처세>, <경영>, <성공> 등등의 팻말이 걸린 판매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금도 이런 류 책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러다가 이런 류의 책들이 왜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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