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경험담이며, 등장인물들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습니다.
나나아줌마는 어디로 가셨을까
내가 나나아줌마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 당시 살던 마을로 이사 온 직후였다. 우리 옆집은 아줌마네 부부와 초등학교 6학년인 큰 아들 재현오빠, 그 밑으로 나이 터울이 많이 나서 네 살짜리 남동생 우현이, 세 살 막내 여동생나나 이렇게 다섯 식구였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재현 오빠의 어머니를 '나나아줌마' 라고 불렀다.
엄마는 나나아줌마를 처음 봤을 때, 그녀가 엄마 자신보다 꽤 어린 사람이라는게 믿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나나아줌마는 그 때 30대 후반 정도라고 했는데, 마른 체구인데다 얼굴에 일찌감치 살이 져서 본래의 나이보다몇 살은 더 많아 보였다. 하지만 못생긴 여자도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스물 즈음에 미스코리아 대회 예선에 나간 적도 있을 정도로 아줌마는 예뻤다고 했다. 그런 나나아줌마가 나이 들어 보이던 까닭은, 외모 자체가 아니라 얼굴의 표정이 언제나 조금씩 어둡고 활짝 웃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때문임을,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내가 처음 어머니와 함께 그 집에 놀러갔을 때는 아기들이랑 노느라고 옆에서 엄마와 아줌마가 얘기하는 걸 잘 듣지 못했다. 그런데 엄마는 그녀와 가까워질수록, 하루하루 하소연만 더 자주 듣게 되었다. 늘 어제 남편이 때렸다, 그래서 몸이 아프다, 라는 이야기였다.
아줌마네는 자주 부부 싸움을 하는데, 그 때마다 남편이 아줌마를 심하게 때린다고 했다. 어떤 날은 내게도 멍든 팔을 보여주기도 했고, 허리가 아파서 며칠째 파스를 붙이고도 있다고 말했다. 며칠 잠잠하다 싶었을 때는 아줌마의 눈가가 정말로, 무슨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분장한 것처럼 둥글고 시커멓게 멍들어 있어서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 그게 그 집의 일상이었다. 나는 왜 우리 옆집은 거실에 가구도 별로 없고 베란다도 텅 비어있을까 궁금해 했었다. 거실에 뭐 좀 놓아보지 않겠냐는 어머니의 말에, '애들 아빠' 가 화가 나면 던져 버릇 하니까, 남아나는 게 없어서.... 라고 아줌마는 말꼬리를 흐렸다. 낮에 내가 아기들과 앉아서 놀던 그 집의 거실은, 밤이 되면 아줌마가 나동그라진 채 남편에게 사정없이 얻어맞던 공간이었다.
나나아줌마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쉽사리 믿어지지도 않았다. 그 때 난는 초등학생이었고, 아줌마의 남편, 그러니까 그 옆집 아저씨는 적어도 그 나이 때의 내가 보기에는 그냥 별다를 것 없는 이웃집의 평범한 남자였다. 오히려 지나가다 마주쳤을 때 "안녕하세요." 라고 꾸벅 인사하면 인사 잘한다면서 칭찬해주고 웃어주니 선량하게까지 보이는 사람이었다. 아줌마 말에 의하면 퇴근하고 돌아와서 술을 마시고 때린다고 하는데, 낮에 내가 그 아저씨를 마주쳤을 때 술 냄새가 풍긴 적도 한 번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 집에서는, 아빠는 아무리 화가 나도 엄마를 때리지 않는 사람이었고, 체벌을 반대한다고 직접 말씀하신 적은 없지만 어쨌든 아이들에게 체벌을 쓰지 않았다. 그런 환경에서 살았던 내가, 남편이 아내에게 상상 이상의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이 어떤 건지,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는 이상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어느날 나나아줌마는 엄마와 나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머리 정수리 부분에 붙여진 큼지막한 반창고를 보여줬다. 엄마가 왜 그렇게 다쳤어, 라고 물었더니 아줌마는 이렇게 말했다. 어제 저녁에 애들 아빠가 내 머리로 장도리를 휘두르는 바람에 머리를 맞아서 피가 철철 났거든요. 그래서 응급실에 가서 상처를 꿰매고 왔다는 것이다. 가까스로 정통으로 맞는 것 까지는 피한 덕택에 두개골까지 금이 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아줌마는 '재현이 아빠' 도 아니고, 늘 '애들 아빠' 라고 했다. 그 순간 만큼은 그 '애들 아빠' 라는 말 속엔, 나나아줌마와 아이들이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밑에서 오도가도 못한 채 평생 참고 살아야 한다는 속박처럼 들렸다.
그런 아줌마의 모습을 보고 뭐라 할 말을 잃은 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엄마는 남편이 때리면 맞고 있지만 말고, 적극적으로 때리지 말라고, 더 크게 소리지르면 안 될까? 하고 물었다. 아줌마는 대답했다. 애들 때문에요, 내가 크게 저항하거나 소리치면 애들 아빠가 화가 나서 더 때리고 그러면 방에 있는 애들이 들어서 잠을 깨니까. 차라리 비위를 맞춰주는 게 덜 맞을 수 있어요. 그럼 애들 아빠도 빨리 끝내고 들어가서 자거든요.
하지만 아저씨가 1년 365일 쉬지 않고 행패를 부린 건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사람들은 그 집의 문제를 '범죄' 급으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을지도 모르겟다. 그런데 한 해가 지나자, 이번에는 엄마뿐 아니라 아빠까지 옆집 아저씨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내게, 이제부터 옆집 아저씨랑 마주쳐도 얘기 많이 하지 말고 인사만 적당히하고 지나쳐, 라고 말했다. 처음에 엄마는 그냥, 어제 밤에 아저씨가 술 먹고 너무 심하게 행패를 부렸으니 보고 배울 어른이 못 된다고만 말했었다. 아직 중학생도 안 된 나를 너무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서 어머니는 내게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몇 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된 일인데, 그날 아저씨는 술을 마시고 나서 나나아줌마에게, 부엌에 있던 가장 큰 식칼을 꺼내들어 휘둘렀다. 아줌마의 비명소리를 듣고 다른 이웃집 아저씨가 뛰어나왔고, 한참 칼을 쥐고 성질을 부리다 선생님 진정하시라고 가까스로 말린 덕택에 아줌마는 몸을 다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은 하필 우리 아빠도 집을 비운 날이었다. 어린 딸을 재우고 난 뒤 혼자서 밤에 집을 지키는 엄마에게, 옆집으로부터 들려오는 고함소리와 비명은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순간에서도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가늠하기 힘든 공포다. 가정 폭력은 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닌, 이웃과 그 생활 공동체에게도 정신적인 고통과 위협을 가져오는 범죄인 것이다.
<가정 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건 1998년 부터다. 그 전에는 아무도 부부싸움에 경찰이 개입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적이 없었다. 신고해도 소용이 없던 건 당연했다. 그래서 엄마가 나나아줌마를 돕기 위해 생각해냈던 궁여지책은 다름 아닌 '전화 걸기' 였다. 옆집에서 싸우는 소리와 아줌마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면, 엄마는 거실에서 무선전화기를 쥐고 앉아서 그 소리를 귀 기울여 들었고, 사태가 더 험악해진다 싶은 순간에 옆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세게 두들겨 패려는 순간 '따르르릉' 하는 전화벨이 울리면 순간적으로 때리는 사람이나 맞는 사람이나, 그 순간에 산통이 깨지는 효과가 있어서 일시적으로나마 부부싸움, 아니 남편의 일방적인 구타가 멈춰질 수 있었다. 꽤 많은 경우, 전화를 끊은 뒤 아저씨는 두들겨 패던 걸 멈추고 안방으로 들어가서 자거나, 더 때리더라도 그 전보다는 한 풀 꺾였다고 한다. 밖에서는 멀쩡하게 사회 생활을 원만히 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던 그는, 남들이 자기 집안 일에 간섭하는 것을 싫어했지만 전화 받는 상대방에게까지 내가 아내를 패고 있다는 걸 굳이 드러내고 싶어하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아줌마가 엄마를 고마워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 가족이 다시 옆 동네로 이사 간 뒤로도, 엄마는 나나아줌마와 가끔 연락을 하고 지냈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 엄마는 한 달 전에 그 집 이혼했대, 그런데 그 집은 부모들이 이혼하는데도 아이들이 시큰둥하고 별로 슬퍼하지도 않았다더라, 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혼은 자식들에겐 너무나 슬픈 일이지만, 밤낮 없이 두들겨 맞는 어머니를 보는 바에는 차라리 이혼해서 조금이라도 평화로워지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을거야, 라고. 그 후로 나나아줌마와는 영영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여성 재소자의 절반은 살인범이며 그 절반은 남편의 폭력에 당하다가 남편을 죽인 아내들이고, 이들을 살인이 아닌 정당방위 내지는 '매맞는 여성 증후군'의 사유로 구제해야 한다는 여론은 계속되고있다.
내 기억 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은 것은 뻔뻔스럽게 친절한 척 하던 그 아저씨의 이중성도 아니고, 아줌마의 몸에서 늘 떠나지 않던 상처도 아니다. 나나아줌마는 늘 슬펐다. 아줌마는 아무리 생각해도 폭력적인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 같았지만, 늘 어딘가 지치고 슬픈 표정이 얼굴에 배어있었다. 처음엔 아줌마만 우울증에 걸린 거라고 생각했지만, 몇 해가 지나고 돌이켜보니 그 때 중학생이 되었던 그 집의 맏아들, 재현 오빠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았다. 어른들은 재현 오빠가 어머니 집안일도 잘 도와드리고 예절도 바른 착한 아들이라고 많이 칭찬했다. 하지만 그 오빠도 말수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고, 웃어도 생기 있어 보인 적이 없었다. 오빠는, 자신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죽도록 맞는 순간, 무슨 생각을 하며 버틸 수 있었을까.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이 없고, 생계와 아이들 문제 때문에 쉽사리 이혼할 수도 없던 나나아줌마에게,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던 법은 한낱 사치에 불과했을 것이다. 나나아줌마와 재현 오빠에, '즐거운 나의 집' 은 커녕, 집이 그저 안식처만이라도되던 날은 며칠이나 있었겠는가.
청소년은 물론이고, 성인 범죄의 큰 원인 중 하나가 유년 시절의 폭력 피해 경험이나 가정의 불화라는 말을 너무나 많이 듣게 된 지금에 와서는 가끔 그 시절이 생각나곤 한다. 나나아줌마는 이제, 평화롭게 살고 있을까. 아줌마를 따라가지 않았다던 재현오빠와 그의 두 동생들은, 그 아버지의 밑에서 어떻게 지내면서 어른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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