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폐지에 대한 또다른 시각
- 로버트 레슬러의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다정 (http://dajungspace.com)
지난 4월, 시사IN은 커버스토리로 사형제에 대한 특집 기사를 실었습니다. 한국이 국제앰네스티로부터 '잠정적인 사형폐지국' 임을 인정받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구치소의 사형수들은 "내일 저 밧줄에 내 목이....." 걸릴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현재 (2008년 5월)에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불거진 다른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에 대한 논란이 많아 일시적으로 관심 밖의 문제가 되었지만, 그간 잇따라 발생한 여성과 아동 대상의 성범죄와 연쇄 살해 사건은, 그 가해자 역시 '살 자격 없다'' 라는 반작용적 심리에 따라 사형제의 존치 의견이 인터넷상에 널리 퍼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사형수들의 인생을 보고, 그들을 구치소에서 지켜본 이들은 범죄자를 양산한 사회적 책임과, 오판의 가능성, 그리고 결국 참회한 사형수 역시 '인간' 이라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사형제의 폐지를 간곡히 부탁하고 있기도 하지요. (사형제 폐지에 관한 더 구체적인 정보는, 시사IN의 문장식 목사의 사형관찰기록 과 조성애 수녀의 인터뷰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계속되는 사형제 논란, 범죄에 대한 사회적 책임
이 때, 사형제의 존치론이나 폐지론 양쪽에는 모두 '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말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형제 폐지 논의에 관해 한국 사회에 큰 화두를 던진 소설 (영화 말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에서도, 흉악범이 되기까지의 사회적 소외와 폭력의 순환, 참회까지 차근차근 그려내고 있지만 역시나 사형제를 존속시키건, 폐지하건 함부로 말도 못 꺼내는 건 바로 '피해자 가족' 들의 심정인가 봅니다. 물론 범죄의 근원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논하다보면, 웬만한 범죄자는 사형이 아닌, 징역이나 그 이하의 형벌을 가하게 하더라도 "'아동 성폭력범' 이나 '연쇄살인범' 만큼은 죽어 마땅하지 않느냐" 라고 하는데 (이것은 뒤집어보면 '웬만하면 사형은 안되겠지만' 이라는 논거가 깔려있다고 볼 수도 있겠죠), 사회가 범죄를 방조하고 양산한 측면이 있는 이상, 가해자 개인의 책임이라고 100% 돌릴 수 없고, 참회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건 그들 뿐 아니라 교도관이나 다른 사회구성원들에게도 큰 정신적 고통이 된다, 국가가 살인이라는 것을 형벌로 삼으면 안된다....라고 해도 '그럼 피해자 가족은 당하고만 있으라는 건가' 라면 쉽사리 반박을 못하게 마련이니까요. 물론 이 글을 쓰는 제 자신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도, 자유로울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 FBI 에서 최초로 연쇄살인에 대한 체계적인 수사시스템을 구축하고, 처음으로 '연쇄살인 (Serial Killer) 라는 용어를 고안한 로버트 레슬러는, 그의 책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원제 "Whoever Fights Monsters")> 에서, 조금 다른 시각으로 사형제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습니다.
연쇄살인범의 검거를 위한 프로파일링
그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한 해 무려 2만여건(!)의 살인 범죄가 일어나고 이 중 5천여 건이 미궁에 빠지게 됩니다. 한국은 미국보다는 연쇄살인 범죄 건수가 훨씬 적지만, 한 명의 가해자의 범죄라도 그 사회적 파장이 더욱 크지요. 그에 비해 민간인이 총기까지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미국은 훨씬 사건 수가 많지만, 그렇다고 총기살인만 있는건 아닙니다. 레슬러 요원이 수사한 연쇄살인의 사례를 읽어보면, 그동안의 한국의 잔인한 토막 살인 행각들은 1차원적(?) 이라는 생각마저 들 지경입니다. 피해자를 죽인 다음 욕조에 피를 풀어서 그걸 마셔버리는(정말로!!!) 살인자부터 시작해서, 살인을 죽이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별별 짓거리를 다 하는 사이코들의 사례를 읽다보면 (여기에 옮기지는 않겠습니다. 관심 가는 분들은 책을 직접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정말 '인간'이 아니라 '괴물'인가, 라고 생각하게 되는거죠.
레슬러 요원은 연쇄살인으로 의심되는 사건이 일어나서 자신에게 수사 합류 요청이 들어왔을 경우, 그간 자신이 분석한 연쇄살인범들의 특징과 사건 현장을 분석하여 수사의 단서를 제시합니다. 언론에서 '프로파일링의 세계' 라고 보도되는 건 그냥 몇가지에 불과하고, 그는 보도되지 않는 (그래야 도주중인 살인범에게 수사정보가 공개되지 않을테니까.) 세세한 사건 현장을 모두 둘러보고 범죄자를 프로파일링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용의자는 30대 중후반 남성, 절도나 성범죄 전과기록 있을 가능성 큼, 결벽증, 반경 30킬로미터 내 거주, 시신을 번쩍 들어 이리저리 옮긴 것으로 봐서 힘이 세고 덩치가 큰 편일 것" 이라는 식으로 잠재적인 용의자의 모습을 제시하면, 그를 토대로 점점 수사망이 촘촘해지는거죠.
또한 그는 설령 자신이 검거하지 않았더라도 미국 내 다른 지역, 다른 사건으로 검거되어 사형 내지는 종신형을 받고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연쇄 살인범들을 만나 면담합니다. 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사이코패스죠. 형사책임을 떠나 사실 사람을 죽이는 일을 몇 차례나 실행에 옮긴 연쇄 살인범이, 그 형사 책임 능력을 별론으로 하더라도 '상식적인' 인간들로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처지는 나름대로 "(본인들의 입장에서는) 자기 인생에서 남을 죽이는 일이 필요했기 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면담을 할때도 일단 사이코패스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게 중요한데, 의외로 사이코패스들은 이런 수사관의 면담에 꽤 잘 협조하곤 한답니다. 교도소에서 독방에 갇혀 복역하는 건 상상 이상으로 지루한 일이기 때문에, 뭘로든 찾아오는 사람들을 앞에 놓고 입다물고 있지는 않는다고 해요.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라도 프로파일러들이 얘기를 듣고 있다가 그의 생각에 동화되어 '듣고보니 그렇구나' 내지는 '이제는 나는 안 죽이겠지' 라고 마음을 놓는 일은 절대 위험하기 때문에, 면담할 때는 꼭 2인 이상의 수사관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건, 이들을 꾸준히 연구해온 레슬러 요원의 의견입니다. 그는 먼저, 이런 미친 범죄자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 이렇게 잘라 말합니다.
"어린 시절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자라서도 완전히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 애정이 없는 어머니, 학대를 일삼는 아버지나 형제들, 손놓고 구경만 하는 학교, 있어도 소용이 없는 사회복지단체, 정상적인 성관계를 맺지 못하는 본인의 무능력 등은 이상성격자를 만들어내기에 딱 좋은 조건이다. 다시 말해 결함이 있는 가정과 사회는 범죄적인 행동과 환상을 키우는 온실 같은 환경을 만들어내 결국에는 무시무시한 비극을 불러온다. '누가 살인했는가' 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그에게 "살인"이라는 환상을 제공했는가' 가 더 중요하다."
무조건 한부모 가정이라거나 고아, 성불구자라고 해서 범죄자가 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성장과정에서 결핍되는 부분과 그것이 다른 어떤 것으로 채워졌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죠.
그럼, 사이코패스는 '제정신' 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레슬러 요원은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엇비슷하게 보이는 연쇄 살인 사건들에서도, 그 각각의 범죄자마다 다른 진단을 내놓습니다. 어떤 흉악범에게는 "이 사람이 있어야 할 곳은 교도소가 아닌 정신병원이다" 라고 하면서도, 다른 살인범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이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사이코 기질을 영원히 버릴 수 없을 것이다" 라고 씁쓸하게 판단하죠. 단적인 예로, 어릴 때부터 온갖 잔혹한 살인의 현장 사진을 보고 쾌감(;;;)을 느껴온 연쇄살인범은, 재판 후 복역하며 레슬러 요원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죽였던 사람들의 살인 현장 사진을 가져다 주시면 안될까요?"
사형제가 능사일까
그럼 이런 구제불능들은 '범죄 없는 사회를 위해서' 할 수 없이 죽여야 할까요? 놀랍게도, 사형제가 쭉 유지되고 있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연쇄살인 수사를 해 온 레슬러 요원은 그에 대한 반대 입장을 보입니다. 레슬러는 1988년, 미국 콴티코의 FBI 아카데미에서 그가 설립한 '강력범죄자 체포 프로그램(VICAP)' 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제 1회 국제 살인 심포지엄>을 열었는데, 이 때 당대 최고의 살인마라는 존 게이시와 에드먼드 캠퍼라는 두 연쇄살인범과, 심포지엄에 참가한 수사관들의 화상 면담을 실시하게 됩니다. 이에 대한 소회를 그는 이렇게 남깁니다.
"1988년 위성 면담을 하는 동안 캠퍼와 게이시는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해주었다. 캠퍼는 자신의 범죄에 대해 전부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모든 것을 인정했으며 때때로 잔인한 부분까지 상세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자신의 살인에 대해서 환상이 차지한 역할에 대해 어느 정도 정신분석학적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견해는 많은 심포지엄 참가자들에게 계시와 같았는데, 어떤 면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캠퍼의 자세한 기억과 설명은 아무리 흉악한 살인자라도 살려둘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들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내버려두기보다는 수감과 상담을 통해 그들의 전철을 밟게 될 다른 잠재적 살인자를 예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을 그냥 처형해봐야 사회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사형으로는 자신만의 환상에 사로잡혀 자아를 상실하고 범죄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대는 다른 잠재적 살인마들을 막을 수 없다. 그리고 사형으로는 실제로 주 예산을 절약할 수도 없다. 한 명의 죄수를 사형하는 데 수백만 달러의 법정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에드먼드 캠퍼같은 범죄자는 살려두고 연구를 하는 것이 더욱 실용적이다.
존 게이시는 90분동안 지켜보고 있던 법 집행관들에게 계속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려 했고, 경찰들이 미결 사항과 사라진 목격자를 추적해서 유죄 판결을 뒤엎고 자신을 풀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게이시의 항소가 진행중이었고, 그는 머지 않아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참석자 중 몇몇은 내가 방송 도중 게이시의 말을 자르지 않고 자기 죄를 인정하도록 종용하지 않았다며 화를 냈다. 나는 그래봤자 아무 소용 없을 것이며, 이 프로그램의 원래 목적이 두 살인마에게 자신의 성격을 참석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가령 참석자들은 게이시가 말을 뒤집는 방식이나 남을 현혹하는 말재간을 부리는 장면을 직접 볼 수 있을 터였다.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요점이 뭔지 파악하지 못했지만, 나는 바로 이런 점들을 배우기 위해 우리가 계속 세미나를 열고 살인과 연쇄살인범에 대한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사형제를 폐지한다면, 그 다음의 한국 사회는?
한국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즉, 결국 사회구성원 모두가 피해자가 될 위험이 존재하는 '묻지마 범죄' 와 '연쇄살인' 에 대해, 이러한 범죄를 예방하고, 피의자를 신속히 검거하는 것이 첫째 목적이 되어야 한다면.....그동안의 연쇄살인범을 죽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이들을 두고 연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레슬러 요원이 연쇄살인범의 프로파일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 범죄자들의 성격과 범죄 패턴을 연구하고 축적한 데이터베이스였기 때문입니다.
이 논리라면, 피해자 가족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하여 가해자를 죽여버리는 것 보다, 그 살인범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서 다음 범죄의 용의자를 하루라도 빨리 검거하고, 피해자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면 그게 피해자 가족을 더 위하는 길이라는 주장도 가능해집니다. 실제로 범죄 피해자의 가족은, 자신들의 피해 뿐 아니라 향후 유사한 범죄가 다른 이에게 발생했을 경우에도 그에 버금가는 심리적 고통을 받는다고도 하니까요. 사형수들도 인간이다, 그러니 무조건 살려두자는 게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사형수를 살려주자, 는 주장 자체의 뉘앙스가 꼭 이들이 호의호식할 기회를 주자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것도 아니게 되지요. 흔히 '내가 내는 세금으로 살인범 밥 먹이기는 싫다' 고 하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사형제도를 운영하는 데도 상당한 액수의 돈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물론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구금되는 기간이 있지만, 범죄에 대한 보다 지속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살인범이 생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잠정적인 사형폐지국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늘 사형 집행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 필요한 논의는, 당장의 사형제 존폐 논의를 넘어서서 범죄 연구와 범죄자의 처우에 대해서까지 확장되어야 합니다. '그들도 인간이기에' 살도록 하자는 것과, '그들을 이용하기 위해' 살려두도록 하자는 주장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레슬러 요원의 의견대로 범죄자를 연구하기 위하여 사형 제도를 폐지하게 된다면, 우리는 얼마만큼이나 '인간의 존엄성' 을 살인자들에게 인정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민주화는 얼마만큼 더 진전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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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자대학교 학생입니다. 사형제 페지 찬반 토론에 포스트에 쓰신 책 내용을 참고해 사형제 폐지 발언을 하려는데 괜찮으신지요?^^
너무 늦게 답변드려 죄송합니다. 토론 잘 하셨기를 바랍니다^^;;
비밀댓글입니다
너무 늦게 답변드려 죄송합니다 ㅠ_ㅠ 이미 마치셨을라나요?
비밀댓글입니다
그럼요. 화이팅입니다^^
이런. 제가 블로그 로그인을 너무 오랜만에 해서 비밀댓글을 못봒습니다. 토론에 이 글을 인용하는 것 얼마든지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