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패트릭 쉔리(John Patrick Shanley)의 희곡 <다우트 Doubt : 원제는 "Doubt : A Parable"> 는2005년에 퓰리처상과 토니상, 뉴욕비평가협회상을 받은 작품입니다.게다가 존 쉔리 각본, 연출로 곧 영화로도 제작된다는군요! 스포일러가 있으니 공연을 볼 예정인 분들은 반드시 공연을 보고 나서 이 글을 읽어주세요. 그리고 <다우트> 의 미국 버전 정보가 궁금한 분들은 여기로 한 번 가 보세요^-^/
(흔히 한국에서는 개신교는 교회, 천주교는 성당에 간다고 말하지만 <다우트>에서는 성당이 아닌 '교회'로 번역되었고, 리뷰 역시 그에 따랐습니다.)
-연극 <다우트 Doubt> 리뷰-
2007.4.15 학전블루소극장
3년차 성직자 제임스 수녀(Sister James/윤다경)는 세속의 일반인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수도자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일반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하다. 하느님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한다. 하지만 제임스 수녀가일하는 교구과 성 니콜라스 학교 (the Saint Nicholas Church School )는 대주교-주교-신부-수녀 로강한 위계질서가 지배하는 이중적인 공간이다
(프로모션 사진 출처 : 인터파크)
믿음으로부터 비롯된 의심
존 패트릭 쉔리는 이런 이중성에서 출발하여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동료간의 의심을 그려내기 시작한다.제임스 수녀의 반 학생인 도날드 뮬러(Donald Muller)의 미심쩍은 행동이 우연히 드러나게 되면서, 성 니콜라스 학교의 교장 엘로이셔스 수녀(Sister Aloysius/예수정)는 체육 교사 플린 신부(Father Flynn/남명렬)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대내외적으로 평판이 좋은데다 학생들과 동료들 모두에게 친절한 플린 신부를 의심해야 하는지, 에 대해 제임스 수녀가 '확신' 을 가지기란 쉽지 않다.오히려유별나 보이는 건 엘로이셔스 수녀다. 완벽주의자에 전교생의 시험 등수를 모조리 기억하고, 서랍에 파일을 넣고서 손가락으로 먼지를 닦아낼만큼 결벽증적인 모습까지 엿보이는 엘로이셔스 수녀는 그 누가 말린다해도 전혀 자신의 의심을 '의심' 하지 않는다. 제임스 수녀가 스스로에게 바라는 교사상은 물론 플린 신부 쪽에 훨씬 더 가깝다. 하지만 엘로이셔스 수녀의 명령에 따라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고, 조금씩 플린 신부를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한다.
물론, 이런 의심이 합리화되는 근거는 이들의 신앙과 성직자로서의 도덕적 의무에서 기인한다. 플린 신부가 정말로 도날드 뮬러와 '부적절한 관계(그가 '소아성애증' 으로 의심된다고는 하지만,극 중에서 딱 꼬집어 제시되지는 않는다)' 인가를 밝히기 위해서 엘로이셔스 수녀는 '하느님에게서 한발 멀어지고, 교회 밖의 세상으로 나갈' 각오까지 한다. 하지만 플린 신부가 항변하다시피, 터무니없게까지 들리는 그 의심에 확실한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글씨체를 망치는 볼펜으로 필기하기, 학생에게 엄격하게 대하지 않는 것, 그리고 신부의 명령에 복종해야하는 수녀로서의 반감이 존재한다. 이런 엘로이셔스 수녀를 꾸짖는 것은 오히려 성직자가 아닌, 뮬러 부인(Mrs. Muller/우명순)이다. 사람들은교회에 와서 성직자의 설교 내지는 조언을 듣고 삶의 방향을 찾는다. 그러나 도날드 뮬러의 어머니는 엘로이셔스 수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만은 않습니다."
연극 무대에서 구현되는 서스펜스
<다우트>의 성취는, 바로 이러한 갈등 양상을 연극이라는 틀 안에서 긴박감있게 구현해 낸 것이다. 홍보자료에 나오다시피,<다우트>에는 반전이 연속해서 드러난다. 하지만 이 작품의 관심사는 그래서 누구 말이 옳았느냐가 아니라 의심하는 인간들의 모습 그 자체를 그려내는 데 있으며, 그를 넘어서서 관객들을 직접 의심의 수렁으로 한 발 한 발 끌어들여버리고 만다. 초반부 엘로이셔스 수녀와 제임스 수녀의 면담은 상당히 긴 시간동안 흐름이 한 번도 끊기지 않는 채 진행된다. 사실 이 시퀀스를 비롯해서, 플린 신부의 체육 수업 장면은 이들간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전 각자의 캐릭터를 관객들에게 각인시키는게 주된 목적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엘로이셔스 수녀 앞에서 쩔쩔매다가 눈물까지 떨구면서도(은근히) 할 말은 다 하는 제임스 수녀와, 웬만큼 꼬집어도 눈썹 하나 꿈틀대지 않을 것처럼 냉정한 엘로이셔스 수녀의 대화는 화제가 바뀔때마다 그 템포가 빨랐다 느렸다 조절되면서 지켜 보는 관객들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이러다보니 다음 장면에서 플린 신부가 아무리 온화하고 친절한 모습들을 보여도, 또 마냥 믿고 편하게 볼 수 만은 없게 된다. 그 후 교장실에서 벌어지는 플린 신부와 엘로이셔스 수녀의 격한 논쟁은 차츰 고조되던 극의 긴장감을 최고치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반전이 거듭된다. 이는 비단 새로운 사실이 폭로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캐릭터 자체의 '의외의 모습' 마저 드러나면서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제임스 수녀 앞에서는 끝까지 정직하고 자애로운 이미지를 보이는 플린 신부이지만, 엘로이셔스 수녀의 꼬장꼬장한 행동들을 '관용의 부족' 이라고 비꼬면서 강론 소재로 써먹는다. 반면에 관객들이 슬슬 엘로이셔스 수녀가 지나치게 근거 없는 의심, 의심을 위한 의심을 하는 게 아닌가 '의심'할 무렵 새로 플린 신부의 과거에 대한 의혹이 제시되어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뜻밖에 뮬러 부인은 아들이 동성애자임을 털어놓으며 부적절한 관계라도 상관없으니 학교를 졸업하기만 하면 상관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우트> 의 반전은 다르다.존 패트릭 쉔리는 확실한 사실을 제시해서 극의 판도를 뒤집어버리고 끝내는게 아니라, 또다른 의혹의 근거를 하나씩 꺼내가며 관객의 의심을 점점 키워간다. 정작 도날드 뮬러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플린 신부가 과거에 다른 교구에서 무슨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건지, 그게 확실하긴 한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가 옳은지는 끝까지 결론이 나지도 않는다. 이 모든 여백에 대한 관객의 상상이 곧 각자의'의심'이 된다.
하느님을 위한, 그러나 너무나 괴롭고 힘든 의심
원제 <Doubt : A Parable> 은 '의심의 우화'쯤으로 해석된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플린 신부의 과거라는 것이 결국에는 그를 쫓아내기 위한 엘로이셔스 수녀의 거짓말이었다는 것을알게된 제임스 수녀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놀라는 건 그녀 뿐만이 아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던 성직자들의 의심 해프닝의 끝에서 "난 아직도, 의심스러워요...." 라고 중얼거리는, 광기까지 어린 듯 한엘로이셔스 수녀의 모습은,후반으로 달려갈수록 의혹으로 점점 차오르던 관객의 마음에 끝내 날을 세워버리고야 만다. 하긴, 의심이란,스캔들에 휘말리는사람 못지 않게 의혹을 가지는 사람 역시괴롭히는일이고, 하느님에게서 한 발짝씩 멀어져가는 것 같지만..... 이토록 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의심, 이 <다우트>또한 실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설령 그것이 배게 속의 깃털처럼 가벼운 것일지라도, 허공으로 훨훨 날아갔을 때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 이라던 플린 신부의 강론이 그러했듯이.
PS 1. 남명렬씨, 목소리 너무 멋지시다! 그리고 윤다경씨, 저렇게 시꺼먼 천모자를 쓰고서도....예쁘시다. 무대에서 눈이 초롱초롱 빛나시던걸요?
PS 2. 퓰리처상은 정말 권위를 인정받을 만 한가보다. <프루프> 도 그렇고 <다우트> 도 그렇고, 지금껏 본 두 개의 수상작품 모두 박진감 있으면서 재미있네.
PS 3. 난 '어둠', 말 그대로 칠흑같은 어둠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어릴 때 놀이공원의 귀신의 집을 갔다가, 정작 귀신이나 다른 건 하나도 안 무서운데 들어가자마자 내 몸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캄캄함에 놀라서 제대로 발도 못 딛을뻔했었다. 그런가하면몇 년 전, 동아리행사 리허설때 강당 불을 몽땅 껐다가 계단에서 고꾸라져 버린적도 있다(......;;) 하지만,소극장 공연에서의 암전 역시 그렇게 어둡고, 무대 동선을 표시한 야광테이프만 몇 개 반짝거릴 뿐인데도 하나도 안 무섭더라. 오히려 다음에는 무슨 이야기, 어떤 음악이 나올까 하고 호기심도 생긴다.
<다우트> 역시 중간중간 암전이 있고, 그 사이에 무대 세트가 180도로 회전하며 바뀌게 된다. 하지만 110분 내내 배우들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작품에 몰입하다보니, 캄캄한 가운데 스스륵 세트 돌아가는 소리까지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홍보가 부족한 탓인지, 일요일 오후 치고 관객이 별로 없었다. 연극의 즐거움, 공연을 보는 기쁨을 더 많은 사람들이 누렸으면 좋겠다. 아....그럼 티켓 예매 경쟁이 더 치열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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