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 십대 시절, 학교에서 겪은 일을 회상하며 정리한 경험담입니다.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가명으로 처리했구요.) 그러니 다른 곳으로 퍼가거나 글을 저장, 사용하는 일은 없도록 해주시길 바랍니다. 두 편으로 나눠 올리겠습니다.
교실이 무너지던 날 (1)
중학생이 되고 나서 놀랐던 일 중의 하나는, 학사 일정이 1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기준으로 철저히 네 토막으로 나뉘어져 진행된다는 거였다. 선생님들은 수업 진도를 나갈 때 어디까지가 '이번 시험 범위' 인지를 가늠하곤 했으며, 우리 역시 시험 범위가 아니면 전혀 예습이나 복습을 하지 않았다. 이러다보니 배운 걸 시험을 통해 되새긴다기보다는 시험을 치르기 위해 수업을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했다. 어른들의 관심사는 학생들이 모두 공부 잘 하고 똑똑한 학생이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무사히(?) 입시를 치르고 학생들의 성적에 등수를 매기는 거였다는 걸 깨달은 이듬해에는 더욱 그랬다.
그래도 나는 어디까지나 학교에서 모범생이고 공부 잘 하는 아이로 통했다. 비록 전교 1,2등을 다툰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반에서 공부 잘 하는 학생 중 하나로 여겨지기는 했었다. 하지만, 남들이 보는 난 어땠는지 몰라도 난 내 성적에 대해 자부심 보다는 조바심을 낸 적이 훨씬 더 많았다. 난 아무것도 잘 하는 것 없고 잘난 점도 없는데, 그나마 성적만 상위권인 아이였고 나만큼은 하는 애들 역시수두룩했기때문이다. 그래서 성적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을때면, 남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기가 그렇게 힘들 수 없었다. 썩 예쁘지도 않고 별다른 소질도 눈에 띄지 않던 나는, 그나마 공부라도 못하면 솔직히, 남들 앞에서 내세울 게 하나도 없고 보잘것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살짝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적어도 내가 다니는, 이 대한민국의 중학교라는 곳은, 어쨌든 나처럼 공부하는 아이들이 유리한 구조로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학교에는 나 같지 않은 학생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리고 어른들은 나같은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들을 믿음직스럽게 생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쟤는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 하며 혀를 끌끌 차곤 했다. 그러니 그 어른들은, 몰랐을 것이다. 아니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모범생이든 날라리든 성적이 어떻든 간에, 우리가 어느샌가 모두 달라져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3학년 영어시간. 어김없이 박은주 선생님은 말했다.
"여러분, 조용히 하세요. 조용!"
우리 학교는 다른 데보다 좀 더 일찍 영어와 수학 과목에 한해 '수준별 이동 수업' 을 실시해왔고, 박은주 선생님은 올해 처음으로 A반을 맡았다. 그러나 A,B,C,D의 4반 중 가장 영어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 모였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교실 분위기는 늘 소란스러웠다. 선생님은 어학실습용 카세트 스피커에 마이크를 꽂고, 애써 화를 참으며 말했다.
"......여러분. 여러분!"
손바닥으로 교탁까지 탕탕 내려치며 선생님이 소리치자, 히히덕거리며 떠들던 남자아이들도 일단 입을 다물었다.
"내가 왜 여러분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단체기합을 안 주는 지 알아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교실 뒤편에서는 여전히 몇 몇 아이들이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부당하기 때문이에요.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는데, 다른 사람이 잘못한 걸로 같이 벌을 받는다는 건 억울하잖아요. 그쵸? 그러니까, 다른 친구들한테 피해 주지 말고, 수업 할 때 다 아는 내용이 나와도, 조용히 하기로 해요. 알았죠?"
정확한 순서를 따져 본 적은 없지만, 우리는 저마다 머릿속에 선생님들의 '서열' 을 매기고 있었다. 영어 선생님같이 20대 여자에다가, 학생들에게 친절한 대신 화를 잘 못 내고, 매를 들지 않는 교사들은 가장 만만하다.이들 앞에서는 웬만큼 떠들거나 버릇 없이 굴더라도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다. 과격하게 때리지는 않더라도, 화낼 때면 골치 아파지는 중년쯤 나이 되는 교사들은 중간 정도에 해당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욕 잘하고, 화낼 때 무섭고, 꼬투리 잡혀서 혼날 때 많이 맞고 나올 걸 각오해야하는 전형적인 학생부 교사들 앞에서는 (속으로 욕할지언정) 일단 조용히 해야 하는 법이다. 누가 설명을 해서 가르쳐 주지 않아도, 모두가 눈치껏 알 수 있는 학교의 법칙이 그랬다.
"나도 여러분들 나이때 단체기합 받으면서 싫었거든요. 그러니까."
어쨌든 여기까지는 수업 분위기가 잡힐락 말락 했었다. 그러나.
"그럼, 앞으로도 조용히 하기로 하고.....야, 조용히 하랬지. 선생님 말 자꾸 안들을거야?"
결국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앳된 외모와 말투의 젊은 여선생님 앞에서, '걸리면 재수없는' 남자 체육선생님의 수업과 같은 분위기는 결코 나오지 못했다. 얼마나 화를 무섭게 내고, 어떻게 때리느냐에 따라 선생님의 '성깔' 을 파악하는 데 익숙한 우리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점점 친구들이 이상해져갔다. 예전과 다름없이 나는, 그리고 나같은 모범생들은 어느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든지간에 수업중에는 일단 조용히 하곤 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 단원으로 진도를 넘어가....근데, 너희들 도대체 왜 이러니, 어? 왜 이렇게들 떠드는거야!"
이런 말을 한 두 사람만 하는 게 아니었다. 도덕, 사회, 국어, 가정 등등 우리 반에 수업하러 들어오는 거의 모든 여선생님들은 수업 도중에도 몇 번 씩이나 교탁 옆구리를 탕탕 두들기며 소리를 질러야 했다. 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남학생들보다는 한결 덜 소란스럽던 여학생들도, 교사가 화를 낼 때만 잠깐 조용히 할 뿐이었다. 다시 수업이 시작되면 쪽지를 돌리고, 만화책을 보고, 그들끼리 도란도란 수다를 떨었다. 물론 이런 일은 예나 지금이나 교실에서 흔하고, 교사들은 원활한 수업 진행을 위해서 몇몇 학생의 딴짓은 지적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한 반에서 수업에 집중하는 아이의 수가 4분의 1도 안 될 정도로, 정말 아이들 거의 모두가 선생님의 수업을 '무시' 해 버리는 거였다.
그날도 그랬다. 사회 시간, IMF 구제금융사태를 예로 들며 스태그플레이션을 설명하던 김혜진 선생님은 여느때와 다름 없이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런데 그 다음, 평소의 그녀로서는 한 번도 해 본적 없을 것 같은 단어가 튀어나왔다.
"이 정신나간 새끼들아, 조용히 안 해!"
평소에는 차가운 말투였지만, 그래도 욕은 고사하고 고함도 질러본 적 없던 젊은 선생님이었다. 수업을 듣던 나나 떠들던 다른 아이들 모두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분을 억누르며, 사회 선생님은 말을 이어갔다.
"쌍소리를 해야만 조용히 하냐 이것들아? 선생이 수업을 하러 들어왔는데, 말이 말 같지 않냐고!"
떠들고, 야단맞고, 잠깐 조용히 하다가 다시 떠들고 하는 과정에는 이미 익숙해진 나였다. 그래서 저 선생님의 행동이도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오히려 드디어 화를 내는구나, 그래 이 상황에서 화가 안 나면 저게 사람이냐 부처님이지.....싶었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 생각하자마자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눈 앞에 있는, 애써 화를 참고있는 저 '선생님' 을 '저게'라고 칭한 거였다. 물론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한테 '저게 어따대고' 하면서 농담조로 말을 한 적은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로, 내가 아무런 악감정도 갖고 있지 않았던 선생님을 물건과 똑같이 '저거' 로 하찮게 여긴 거였다.
보통 학생들은 그들끼리 있으면서 선생님 '뒷담화'를 할 때, '담임' 이라거나 '김혜진'이라는 식으로 이름만 얘기하지 존칭은 생략하곤 한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나는 교사를 두 부류로 나눠서, 적어도 별 악감정이 없거나 좋게 보는 선생님은 "선생님" 으로, 싫은 선생님은 그냥 이름까지만 부르기 시작했다. 수학을 가르치던 우리 담임 선생님도 난 싫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내가 '담임 선생님'이 아니라 그냥 '담임'이라고만 부를 수 밖에 없게된 날이 곧 찾아왔다.
5교시 국어시간이었다. 점심시간 직후의 수업은 특히 산만한 날이 많다. 하지만 우리 반을 가르치는 이경숙 선생님은 여선생님 중에서도 비교적 강단있게 수업을 진행해나가는 편이었고, 나도딱히 이 수업을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틀에 박힌 국어 교과서로 진도를 나가는 건 결코 재미난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크게 지루하지도 않고 조리있게 설명을 듣는 시간이었으니까. 그렇게 프린트에 필기를 하며 별 생각없이 앉아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수업 중반 즈음부터 뒷자리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우우우~"
"누구니? 수업 시간에 장난을 치고."
선생님은 교과서에서 눈을 떼고 뒷자리에 앉은 남학생 한 무리를 응시했다. 하지만 3분단 뒷자리쪽에 앉은 대여섯명의 남자아이들은 선생님의 시선을 마주치고서도 놀라기는 커녕 오히려 키득키득 웃기만 했다.
"너희들, 장난 치지말고 교과서 펴. 어서."
"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지적 받고서도 아이들은 히히 웃으면서 책을 뒤적였다. 그러고나서 3, 4분쯤 지났을까. 다시 그 소리가 들렸다.
"우우우~"
"너희들 정말!"
이경숙 선생님은 교탁위에 놓아두었던 지휘봉 - 주로 칠판을 짚으며 설명할 때 쓰고, 때로는 숙제를 안 해오거나 떠든 아이들 손바닥을 가볍게 때리던 - 를 들고 뒷자리로 갔다. 하지만 분명히 한 사람 목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찾을 수 없었다. 예닐곱명이 다 같이 입을 두 손으로 가린 다음에, 한 명만 '우~' 하고 야유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입술을 깨물며 그 아이들을 노려보았다. 그렇지만 누구도 그 눈초리에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힐끔힐끔 보며 킥킥 웃어댈 뿐이었다.
"너, 수업 시간에 이게 무슨 짓이니!"
"아, 저 아니에요~"
선생님은 일단 제일 앞 쪽에 앉은 아이에게 야단을 쳤다. 하지만 아니라는 말에 뭐라고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선생님은 물론이고 지켜보던 우리조차도 그게 누구 목소리였는지 감을 잡지 못했으니까. 당황한 선생님은 그 뒤에 앉은 아이, 우리반에서는 날라리로 통하던 박성준에게 따끔하게 말했다.
"니가 그랬니, 그럼?"
"아~니요?"
피식 웃으면서 성준이는 고개를 돌렸다. 기가 막힌 선생님은 드디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너 누가 선생님한테 이렇게 버릇없이 말하래? 공부는 안 하고, 수업까지 방해하면서!"
그 때였다.성준이는 자기 어깨를 붙잡은 선생님의 손을 홱 뿌리치면서,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아 왜이래요 정말! 나 아니라니까~"
그러고나서 성준이는, 그리고 그 짝 재혁이를 비롯해 입을 가리고 장난에 동참했던 주위 아이들은 모두 이경숙 선생님을 보며 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단순한 비웃음도, 상황이 우스워서 나오는 폭소도 아니었다. 눈 앞에 있는 교사라는 사람을 대놓고 같잖게 여기는, 비아냥이 섞인 웃음이었다. 그리고, 모처럼 만에 조용해진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그 광경을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나 역시 이게 웬일인가 싶어서 입이 딱 벌어졌다. 2분단 앞쪽에 앉아있던 나와 3분단 뒷줄의 이 사건 현장(?)은 꽤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시력은 좋은 탓에 그들의 모든 표정이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성준이와 선생님의 눈이 마주쳤다. 여전히 웃음띤 그 아이의 눈빛에도 '당신의 가르침은 그저 시간낭비일 뿐이라구요'라는 듯한 조소가 어려있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아이의 앞에서, 국어선생님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던 비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경숙 선생님, 유행이 지난 두꺼운 안경과 정장을 입고 다녀서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도 비교적 괜찮은 교사라고 생각되어오던, 내 어머니 뻘 쯤 되는 나이의 그녀 역시 교직 생활이래 이런 일은 처음 겪는 것 같았다. 선생님의 눈썹과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고 얼굴에는 견딜 수 없을 모멸감이 덮쳤다. 그리고, 선생님은 결국 무너졌다.
"어떻게, 선생님이, 수업을, 하고 있는데, 앞에 나와서 가르치는데, 너희가.....어떻게 이런....."
부들부들 떨던 선생님은 돌아서서 교탁 앞으로 걸어가는 중에도 이 말만 몇 번 씩 중얼거렸다. 너희 학생들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그런데 그럴 수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도 아니고, 웬만한 교사보다 더 덩치도 크고 힘도 센 아이들이 수두룩한 이 교실에서, 선생님 한 두 명이 아무리 엄하게 분위기를 잡아도 삼사십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쪽수로 밀어붙여서' 무시해버리면 아무 대책이 없다는 걸. 그걸 지금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니."
이 말을 남기고 선생님은 교실을 나갔다. 수업시간은 이삼십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한 번 나간 선생님이 다시 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건 우리 모두 눈치채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서영이가 소리 죽여 말했다.
"쟤네 이제, 담임한테 죽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아까 3교시, 도덕시간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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