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그리고 80> 의 원작자는 콜린 히긴스(Colin Higgins) 이며 원제는 "Harold &Moade" 입니다. 이 연극은 1971년에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인터넷상(해외사이트)의 대부분의 정보가 연극이 아닌 영화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이름과 몇몇 대사를 제외한 다른 자료는 참고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번 리뷰를 쓰는 데에는 sweet sorrow 의 "sweet sorrow" 라는 노래가 해석의 열쇠가 되어줬기 때문에 글의 제목을 노래가사 일부로부터 sampling(?) 해봤습니다^^



Sweet Sorrow Makes A Better Tomorrow
              -연극 <19 그리고 80> 리뷰- 
                  
2006.1.11 우림청담씨어터


다정(http://dajungspace.com)





<19그리고 80>의 초반부, 모드(Moade / 박정자)는 시든 가로수를 묘지로 옮겨심으려고 하지만, 그러면 안된다고 말리는 정원사(채용병, 1인 3역)와 신부(Father Finnegan / 김정석)에게 이렇게 묻는다. "(가로수를 옮기면 안된다는 것이) 규칙이라구요? 그 규칙이 왜 있는 거죠?" 그러게나 말이다. 사람들 말마따나 가로수는 길가에 있어야지 함부로 옮기면 안된다. 그러나 그렇게 계속 내버려두면 나무는 정말 말라 죽어버리고 말게다. 바다표범도 마찬가지다. 동물원에서 탈출시키면 안된다는 것이 규칙이지만, 그렇게 답답하고 더러운 우리속에 가둬두는 것은 바다표범을 위한 일이 아니다.
수많은 규범들로부터 남들이어떻게 되건 말건 일탈을 즐기는 철부지스러운 행동은 물론 옳지않다. 하지만 규칙을 단순히 지키지 않는 것과 그 규칙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엉뚱하고 대책없어 보일지라도, 모드는 우리가그 '규칙'들을 지키며 사는 게 정말 옳은 일인지 묻고 있을 뿐이다. 왜 바다표범이동물원 우리에 갇혀있어야 하는가? 왜 해롤드의 어머니(Ms.Chason / 홍성경)와 의사(Dr. Harley / 채용병), 신부는 해롤드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도 막상 그의 우울증을 고칠 수 없는걸까? 모드의 행동을 빌려 <19 그리고 80> 이 말하는 '규칙' 은,사실<19 그리고 80>의 '어른들' 과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의 방식(rule)이다.




어른아이의 키가 크고, 밝고, 소박한 방식



그들은 나름대로 해롤드의 우울증을 '고치려고' 한다. 그동안 해롤드가 자살시도를 워낙에 많이 하다보니 이제는 좀 덜 놀라게 되었다 뿐이지, 의사에게 아들을 부탁하는 체이슨 부인에게 진정으로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은 분명히 있다.하지만 해롤드를 걱정하면서도 이 어른들은 한결같이 해롤드 자체에 대해서는 알려하지 않고, 그저 '비정상' 인 아이를 자신들의 관점에서 '고쳐놓고' 싶어할 뿐이다.
모드는 이런 어른들에 지친 해롤드에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가간다.모드는 해롤드 주위의 다른 어른들보다 더 나이가 많은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다가가는 방식은 상당히 '아이적'이다. 처음 만나는 해롤드에게 호기심어린 얼굴로 말을 걸다가 '이것 좀 먹어보라' 거나, '우리 집에 가보지 않을래' 라고 하면서 자신의 방을 보여주고, 같이 노래를 부르면서 가까워지는 과정은 사실 아이들이 '같이 놀게되는' 과정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모드는 해롤드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 볼 것을 결코 강요하지 않는다. 모드가 자신의 물건들을 보여주고, 함께 바다표범을 놓아주러 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재미있는 일을 해롤드도 같이 느껴보았으면 하는 소망에 있는 것일 뿐, 자신의 틀안에 해롤드를 가두는 것이 옳다고 믿는 것이 아니다.








어른들은 '조건' 을 따진다. 그것이 그들의 룰이다. 하지만 남들 시선에 맞추는 규칙 앞에서 사람은 정작 자신만의 꾸밈없는 내면의 모습보다는겉으로 드러나는 획일적인 기준 아래 비슷비슷해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결혼상대자로 온 여자들(Nancy, Silvia, Sunshine - 박선옥, 1인 4역)은 뭘 좋아하고 누구를 사랑하는지보다, 직업이 뭐고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가 중요하다. 이런 것을 익히 경험한 해롤드는 다시 태어나면 '다 비슷비슷한 이 꽃 들 중 하나' 가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모드는 다르다. 그녀는 사람들이 본연의 모습인 '이것' 대신에 '저것' 처럼 되고 싶어하고 그렇게 행동하는것을 알지만, 그런 '규칙' 너머의 진실한 인간성이 있다는 것 역시믿고 있기에 "처음 봤을 때는 다 똑같다고 생각하게 되지.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보면 단 하나도 똑같은꽃은 없다는 걸 알게돼. 사람도 마찬가지야. 나름대로 하나의 개체지." 라고 이야기 해 줄 수 있다.
그로써 해롤드는 자기가 왜 답답해했는지 털어놓을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성을 쌓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라고. 왜 안 그렇겠는가. 어디까지나 (어머니의 기준에서) 좋은 신부감과 결혼시키는걸로 해롤드의 행복이 이뤄진다고 믿는 체이슨 부인은 결혼정보회사에 보낼 서류에 해롤드의 성격을 멋대로 써 보냈고, 해롤드의 이야기를 들으며 심리치료를 하려는 정신과 의사도 막상 대화가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곧바로 이야기를 끊었다. 그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해롤드의 우울증을 고치지 못하는 까닭도 결국은 해롤드와 마음을 터놓지 못하는 데서 오는 당연한 결과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간단하지. '성문을 열고 다리를 내리면' 되는걸.




이것 역시도 언젠가는 다 지난일이 되겠지만




그래서 해롤드가 모드에게 청혼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극에서 가장 큰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결혼이 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사람들은 다들 결혼은 사랑으로 이루어지고 평생의 반려자를 찾는 기쁨이라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극단적으로 '조건' 을 따지는 이중성을 지닌 인간관계의 전형이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남부러울 데 없는 부잣집 외아들인 해롤드의 인생은 남들 눈에 보기좋게 심어졌어도 시름시름 시들어가던 가로수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런 그가 자신과 유일하게 마음이 통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사람을 찾았다는데, 19살과 80살이 결혼한다는 것이 성(性)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우물쭈물 말하는 신부의 모습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하지만 이후부터 콜린 히긴스는 관객의 예상과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 틀어서 극을 전개시킨다. 왜 이 연극은 이 커플의 사랑을 더 다루지않고 모드가 죽게 내버려두는가. 게다가 <19 그리고 80>에서는 해롤드의 주변환경이 비교적 자세히 묘사되는 것과 달리, 모드는 장례식장에 다니며 자신의 죽음에 대해 서서히 준비하고 있었고,옛날 사진을 보며 '나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지' 하며 눈물을 흘림으로써 그녀의 인생이 파란만장했음을 암시하기만 했을 뿐이다. 모드의 자살 이유도 딱 부러지게 제시되는 게 아니라 그저 80살이 가장 죽기 적당한 나이라고만 말하고서는 나머지를 모두 관객의 상상에 맡겨버리지만, 사실콜린 히긴스로서는 창작자로서의 당연한 고집을 부린 것 뿐이다. 만약 극에서 모드의 과거를 좀더 언급한다거나, 그로써 해롤드와 모드의 결혼 과정이 전면적으로 부각된다면 관객의 시선에서는 더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었겠지만 <19 그리고 80>은 스스로가 독특한 사랑이야기의 하나 뿐으로 정의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콜린 히긴스와 모드가해롤드에게, 그리고 해롤드에 감정이입된 관객에게 길게 여운을 남기고 싶은 것은 모드의 과거나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의 모습과 인생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모드의 죽음이 해롤드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느냐다. 해롤드는 반지까지 준비하면서 모드에게 가지만, 실제로는 앞으로 어떻게 둘이살림을 꾸리고 살아나갈건지 등에 대한 현실적인 계획들이 생략되었기 때문에 한 남자의 진지한 청혼이라기 보다는 첫사랑에게 하는 소년의 고백 같이 보이는 면이 분명히 있다. (이건 해롤드를 연기하는 윤태웅씨가 자신과 결혼할 여성을 찾아다니는 나이대의 남성이 아닌, 말 그대로 '19살짜리' 소년으로 보이도록 하는 데다가 무대 세트도 인테리어의 현실감보다는화사한 수채화같은 동화적인 느낌이 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살시도'라는 극단의 파괴적인 행동을 통해서 다른이들이 자신의 죽음에 눈물흘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했던, 그리고 그로써 관심받고 싶어했던해롤드는 아이러니 하게도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슬퍼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사별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헤어짐으로 인해 드러나는 진실한 사랑이라는 아이러니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80살을 산 노인의 삶에 대한 통찰은 결국 어린이의 천진함과 맞닿아 있고, 아무것도 자신의 소유로 하지 않으려던 모드가 사실 가장 넉넉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 죽음으로써 비로소 삶의 아름다움을 실감하게 되는 역설들. 콜린 히긴스가 이중적인 세상의 군상으로부터 이끌어내는 이런 아이러니들은, 한 줄의 규칙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기에 그 앞에서 도저히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는 인생의 섭리다.

모드는 옛날이야기를 해 주며 '그리고 이것 역시도 언젠가는 다 지난 일이 되고 말리라' 고 되뇌인다. 그렇게 해롤드와 모드의 로맨스는 과거가 되었지만,얼마의 시간이 지났을 지 모르는 순간에서 해롤드는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모드와의 사랑과 이별이라는 '달콤한 슬픔' 으로부터, 드디어 해롤드는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PS-1 우림청담씨어터는 대학로가 아닌 강남의 외진 곳에 덩그러니 자리한 공연장이라서 그간 사람들의 발길이 잦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러나 지금 우림청담씨어터가 해야 할 일은 교통편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앞뒷좌석 높낮이를 다시 조정하는 공사다. 예매를 늦게 한 탓에 1층 10열 15번 좌석에 앉게 된 나, 일부러 가운데 복도 바로 뒷좌석으로 표를 끊었는데도 막상 앉고나니 저만치 앞좌석에 무대 밑이 가려진다. 별 수 없이의자에 등을 기대는 걸 포기하고 허리를 세워 보려니까 곧 뒤쪽의 관객이 이렇게 부탁하심. '저기요 의자에 기대지 않으면 뒤에서 안 보이거든요' (나는 앉은 키도, 선 키도 상당히 작은 여성관객이다!) 세상에, 이 정도 시설과 규모의 중극장에서, 줄줄이 사석이될 줄이야. 별 수 없이 해롤드와 선샤인이 하는 어설픈 로미오와 줄리엣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PS-2 모드를 따라 나무에 올라간 해롤드는, '(모드의) 그 친구들이 누구냐'고 묻는다. 그러자 모드는 활짝 웃으면서 두 팔을 벌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인류"

모드 특유의 엉뚱한 행동들 때문에 공연 내내 즐겁게 웃던 관객들이었지만, 이번에는 모두들 '와~' 하는 환호와 함께 박수를 쳤다. 해롤드를 향해 고개를 돌리려던 모드는 그런 관객들을 향해수줍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 때, 나는 모드가 된 박정자씨의 얼굴을 보면서 배우의 미소만으로도 감동을 받는다는 게 무엇인지느낄 수 있었다.

객석에 앉는 내게 무대 너머는 늘 환상이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없다. 하지만, 만약 커튼콜때 누군가가 내 손을 잡고 무대로 올라오도록 했다면, 나는 엄마에게 하는 것처럼 박정자씨를 꼭 안으면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고마워요 모드. 당신을 만난 후로 내 겉모습은 변하지 않았을지라도,나의 이십대는 당신으로 인해 좀 더 환해졌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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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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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joheunnal BlogIcon joheunnal 2008/04/15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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