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생소하게 들리는 마샬 아츠(Marshall Arts)는 원래 쿵푸나 태권도 등의 동양무술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점프>의 제작진은 이런 무술과 아크로바트를 합쳐서 넌버빌 퍼포먼스 공연을 기획하게 되었다는군요.
쇼와 드라마 사이, 파워 액션!
-마샬 아츠 퍼포먼스 <점프 Jump!!> 리뷰-
2005.12.25 제일화재 세실극장
<점프>는 분명히 무술만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진기명기 쇼는 아닙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연극과는 분명히 다른 방식으로 드라마타이징(dramatising)을 하고 있기도 하죠. <점프>는 극 속에서 배우들의 무술 시연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면, 전체 구조는 손님맞이-로맨스-도둑침입-한판승부라는 비교적 단순한 편에 속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무대공연에서 영화 뺨치는 액션연기나 무술시범이 나왔다고 해서 이 작품이 국내와 해외의 비평과 흥행(<점프>는 2005년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상당한 반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기계적인 답변일지 모르겠지만, 결국'무술과 드라마의 조화' 가 성공했기 때문이겠지요.
<점프>의 배우들은 무대에서 실제로,'진짜' 무술을 선보입니다.물론 공연 자체는 코미디의 측면이 많기 때문에'무술가족' 이라는 컨셉 자체만으로도단번에 웃기려는 설정이군, 이라고 넘겨짚을 수는 있겠지요. 이건 그동안 개그콘서트나 웃찾사에서 수많은 개그맨들이 보여준 가짜 차력쇼나 무술개그를 본 적 있는 시청자(정확히 말하면, 브라운관 앞에서는 시청자 / 공연장에서는 관객이 되는)라면 당연한 반응입니다. 하지만 <점프>는 다르죠. '연습' 이 아닌 '트레이닝' 을 거쳐 무대로 나오는 배우들은, 서커스까지는 아니더라도 눈 앞에서 놀랄만한 무술과 액션 연기를 선보입니다. 중간 중간에 코믹한 무술 시연(가짜로 송판을 격파하든지 하는)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미 '우리는 무술 쫌(!) 한다' 라고 관객에게 보여주고나서의 진지함을 웃음으로 바꾸느라 중간중간에 등장할 뿐입니다.
그러나 <점프>는 그냥 '무술을 도입한 연극' 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철저히 '무술' 이 부각되는 드라마타이징에까지 성공했습니다. <점프>에서는 극중 인물의 리더격이라고 할 수 있는 할아버지(정의혁)의 몇 마디나, 관객과 대화하는잠깐의 장면을 빼고는 대사가 없는 넌버빌 퍼포먼스(non-verval performance) 입니다. 이것은 <점프> 이전에는 주로 영화로 액션을 접해왔던 관객에게 점프의 관람포인트를 제시하는 중요한 설정이죠. 수많은 액션영화에서 그 '액션' 이라든가, 무술은 영상을 위해 나오는 수단이었던 의미가 강했을 뿐 액션 장면 자체가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점프>에서의 무술은 설정을 넘어서서, 캐릭터 간의 소통의 수단으로 쓰입니다. 할아버지, 아버지(한진), 어머니(김현주), 삼촌(이재훈), 딸(황희정), 사위(이정수)로 구성되는 가족과 도둑 두 명(홍윤갑,김철무)은 (실제 등장인물은한 분더 - 노인 역의 김진태 - 있습니다만) 서로 대결하고,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삼촌을 혼내고, 심지어프로포즈도 무술로 합니다. 만약에 대사와 무술이 병행되었다면 어땠을까요. 대사를 치며 액션 연기를 하는 배우도 힘들었겠지만, 관객에게는 이 작품이 그냥 무술가족이야기라는 코미디 연극 이상으로 다가갈 수 없었을 겁니다. 마임과 무술로만 이루어지는 사건 사고가 진행되면서 점프는 비로소 쇼도, 드라마도 아닌 그 중간에서의 정체성을 찾게 되는 것이죠. 그 뿐 아니라 캐릭터의성격 역시 무술 연기로 드러나는데, 취권을 구사하는 삼촌과 상당히 부드러운 무용식(?) 무술을 구사하는 딸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네요.
드라마적인 측면을 보자면,그다지 신선한 설정은 아닌 건 사실입니다.하지만 일일연속극에서 질리도록 써먹는 3세대 대가족을 무대로 옮겨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어머니는 어머니답게 행동하는 공중파스러운 행태를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캐릭터를 다양하게 만드는 시도에서 나온 설정일텐데, 실질적으로는가부장제가 아닌리더(할아버지)와 나머지 구성원 체제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 잘 드러나지 않은 점프의 진보적인 면이겠지요. 이런 점이 '무술'에 매료되었으나 가족간 개인주의적 성향이 더 강한영국 관객들도 무리없이 설정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을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점프>의 제작진은 관객들이 주로 영상으로 액션을 접해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영화에서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던 장면들(날아오는 총알 손으로 잡기 등)을 무대라는 '속임수 아닌 속임수' 로 능청스럽게 바꿔버리기도 합니다. 앞으로 발굴될 것보다 이미 나온 바 있는 소재들이 훨씬 많기에 기존의 창작물을 어떻게 '거듭나게' 하는가가 제작자의 현실적인 고민이라는 걸 생각해본다면, <점프>는 충분히 좋은 공연으로 인정받을 수 있겠지요.
물론 <점프>는 몇 년에 걸쳐 다듬어진 공연이기는 하지만, '무술로 통하는 세계관' 을 가진스토리이기 때문에그 무대를 집에서 다른 공간으로 바꾸는 식으로라도 얼마든지 스핀 오프(spin-off)가 가능합니다. 꾸준히 진화하는 <점프>를 기대합니다.
PS 1 <점프> 제작사는배우 전원의 명의로'상해보험' 을 가입하라~ 가입하라~ 액션 강도를 생각하면 공연 시간 90분은 결코 짧지 않다.
PS 2 최고의 좌석은 세실극장 나열 11번~ 아이 부끄러워~(응?!) 크리스마스에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 :)
PS 3 12월 25일 공연한 배우분들 성함이 아직 파악이 되지 않았습니다(공식 홈 http://www.hijump.co.kr 에 소개된 캐스팅과 다르더군요). 확인되는대로 배역 옆에 ( ) 라고 쓰겠습니다. - 1월 8일,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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