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가 1년여간 학생을 지도하며 '체벌 없이' 성적을 향상시켜준 경험으로서, 약 3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 학생 지도 방법을 고민하는 학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 그리고 공부는 하기 싫지만 성적을 올리고 싶어하는 학생 여러분들께 미욱하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등장하는 사람들 이름은 가명입니다.)
윤진이의 스케치북 (1)
다정(http://dajungspace.com)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내가 너무 쑥스럽고 어색하거든? 그냥 언니라고 불러버려^^ 반갑다!"
사실 내가 대학생들의 과외 아르바이트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적은 없었다. 보기 드물게(?) 학교에서는 모범생으로 살았으면서 왜 우리가 새벽부터 일어나서 억지로 아침 7시부터 시작되는 아침자습에 가야하는지, 왜 학원을 다녀야 하고 꽉 매여 살아야 하는 건지 고민을 해 온 나로서는 그랬다. 공부를 잘 하는 많은 고등학생들은 자기가 수험생이던 시절에는 비싼 사교육을 받아야만 대학을 가는 현실을 탓하다고 막상 자신들이 대학생이 되면 가장 수월하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인 '과외' 를 찾아 전단지를 붙이고 수소문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런 활동은 지난날 그토록 싫어했던 입시 위주 교육 체제에 일조하는 것 아니냐고 나는 반문해왔고 그래서 대학에 입학한 지 반년이 되도록 과외를 나가지 않았다. 물론 우리 집안이 내가 과외를 하며 직접 학비를 벌어야 할만큼 어렵진 않았던데다가 아버지께서 (대학생 딸을 둔 부모로서는 드물게) '돈은 아직 내가 벌 수 있으니 과외 다닐 시간에 공부나 해라'고 하며 용돈이 필요하면 더 주는 한이 있어도 아르바이트는 하지 말라고 막은 덕택이기도 하지만.
하지만 나까지 대학에 들어가고나자 엄마의 동네 친구분들이 슬슬 전화를 하거나 만나서 '딸이 이번에 대학 갔다는데 우리 아이 공부좀 봐주면 안 되겠냐' 고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학부모 입장에서 과외는 아파트에 붙은 전단지를 보고 연락을 하는 것보다 주위 아는 사람 중 공부 잘했던 아들이나 딸을 둔 사람에게 부탁하는 게 더 믿음이 간다고 한다.) 처음에는 안 하겠다고 하다가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을 잠깐 봐줬었는데 며칠 뒤 그쪽에서 '미안하지만 학원에 다니는 게 낫겠다' 고 거절을 했다. 그러고 나서 만난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의 윤진이었다.
가느다란 얼굴 선을 가진 윤진이는 첫 날부터 표정이 어둡고 조용했다. 보통 열다섯살 정도의 여학생이라면 스무 살을 갓 넘은 언니 앞에서 금방 웃고 떠들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고, 묵묵히 어머니와 나의 대화를 듣기만 했다.
윤진이 어머니는 정말이지 물에 빠져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냥 이름 불러도 되지? 친구 딸이니까."
"예, 그럼요. (윤진이 어머니와 우리 어머니는 중학교 동창이다)"
윤진이 어머니는 내게 윤진이의 처지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 이후 꾸준히 날 믿고 딸을 맡겨주신 아주머니는 내가 과외를 계속할 수 있게 한 큰 힘이 된다.)
"아니, 우리 윤진이가 미술을 잘해서, 그걸로 계속해서 예고 가려고 하거든. 그런데 성적이 너무 뒷받쳐 주지를 못하니까. 미술은 그냥, 실기만 하면 98점, 100점 그렇게 나오거든? 잘해, 아주. 근데 다른 과목은 시험만 봤다하면 막 60점, 70점......가끔 50점대도 나오고."
"그럼 그 전에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는 받아봤나요?"
"지금도 학교 맞은편에 있는 S아카데미는 다녀.과외도 받아본 적 있고. 그런데 성적이 도무지 변화가 없고 그러니까 인제 너희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도와달라고 한거지. 뭐가 부족해서 공부를 못하는 지 모르겠어."
아주머니는 한숨을 푹 쉬셨지만, 나는 막상 윤진이가 더 걱정이 되었다. 자식 장래가 걱정되는 어머니의 심정이야안 봐도 비디오요 안 들어도 오디오라지만, 성적이 생각만큼 안 나올때 가장 마음 고생이 심한 것은 바로 학생 자신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옆에서 듣는 윤진이를 보니 여전히 표정 변화가 없다. 깡동하게 자른 단발머리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더 자신있게 말했다.
"윤진이가 지금까지, 공부하는 방법을 몰랐어서 그런 거구요, 평소에 국영수사과 중심으로 틈틈이 하다가 시험기간에 암기과목 공부하고 그러면은, 진짜 바보 아닌 다음에야 평균 80점? 85점? 이 정도를 안 넘을 수가 없어요."
"정말이니?"
"그럼요. 윤진이나, 다른 성적 안 나오는 아이들이 다공부를 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런 거예요. 그래서 학원을 다니고 과외를 해도 효과가 없었던 거구요. 제가 공부하는 법 가르쳐줄게요. 걱정마세요"
아주머니께서는 그러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잘 부탁한다고 하시며 한결 가벼운 얼굴로 나갔다. 이제 방안에는 윤진이와 나만 남았다. 내 이름을 다시 말해주고 서로 핸드폰 번호를 교환했다. 그리고 나서 내가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그럼 지금까지 학원은 쭉 다닌거야?"
"예."
'어디어디?"
"그냥 S아카데미에서 종합반 수업 듣구요, 옆에 E미술학원 다녀요."
윤진이 책상 앞에 붙은 학원시간표를 보니, 미술학원 스케줄까지 더해져서 이건 뭐 거의 문어발 수준이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예고 입시를 준비하는 윤진이로서는 일반 보습학원보다 미술학원이 먼저였다. 애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밥 먹고 다시 학원 가는 것도 상당히 권태로운 일일텐데, 미술학원에서 하루에 세 시간은 더 매여있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일단 나는 윤진이의 성적을 올려주기 위해 온 '과외선생님' 이니까, 생각을 접고 시간표를 분석해줬다.
"이걸 봐. 넌 지금 약 세시 반에 학교에서 오는데, 집에 와서 밥 먹고 좀 있다가 학원 가서 수학 강의듣고 30분있다가 미술가고, 다음 날에는 학원 강의 두개에 미술, 이러다보니 쉬는 날이 하나도 없지? 공부하려면 학원 수업을 듣는게 중요하지 않아. 자기가 혼자 책상에 앉아서 공부할 시간을 최대한 늘려야 되는데. 넌 지금 중간에 어정쩡하게 시간이 비는 대신에 두 시간 이상 앉아 혼자책 들여다볼 짬은 안 나네."
"......."
"학원 끊으면 어때? 아니면 스케줄을 조정해서 학원 가는 시간을며칠로 확 몰던가."
"예? 그게....미술학원 때문에 안 될 거같은데요. 학원도 다른 애들은 그냥 월수금 아니면 화목토로 가는데 저는 미술때문에 드문드문 듣는 거라서......."
성적이 안 나오는 학생이나 부모가 흔히 하는 착각은 학원에 가야 그나마 이정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건 정말 아니다. 학원에 가서 이중으로 수업을 듣거나 선행학습을 하는 것이 아무리 대세라지만, 무턱대고 학원만 가고 복습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더 끔찍한(?) 결과만 초래되기 마련이다. 이런 내 생각을 말씀드리자 아주머니도 수긍은 하시는데, 아무래도 100% 믿는 눈치는 아니셨다.
"그런데 그 학원을 1년 동안 다녔는데도, 성적은 제자리였다면 차라리 학원을 옮겨 보는 건 어떨까요?"
"글쎄, 근데 또 학원 선생님이랑 통화를 해 보면 이건 학원을 옮겨서 될 문제가 아니라고 설득을 하니까, 또 그게 수긍이 가거든."
그렇다면, 일단 나를 믿어달라고 말씀드리는 게 순서다 싶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 제가 일주일에 두 번씩 와서 윤진이한테 영어 가르쳐주면서, 시험공부 어떻게 하는지를 같이 알려주고 학원은 계속 나가는 걸로요."
"수학 과외는 같이 안 하고? (대부분 중학생 과외는 영어와 수학을 같이 한다)"
"제가 수학 과외를 같이 할 수는 있지만, 그러면 제가 수학 문제집을 미리 풀어와야 되거든요. 그런데 제가 거기까지 할 여유는 없는 것 같구요. 중학교 수준 영어는 그냥 와도 다 가르칠 수 있어서요. 더군다나 윤진이는 지금 국어는 혼자 웬만큼 하는 것 같지만 수학이랑 과학은 따로 배워야 할 거 같거든요. 근데 그러면 저같은 문과보다, 공대나 자연대 다니는 이과생한테 같이 묶어서 배우는게 더 좋을 거예요.그 친구들은 고등학교때 그쪽을 더 열심히 했으니까. (실제로 중학교 과학은, 그 전공자가 아닌 이상 다른 과목보다 도 수업 준비가 꽤 필요하다.)"
과외받는 학생들은 모르겠지만 의외로 문제집도 미리 안 풀어보고 대충 준비해서 과외 수업을 하는 대학생들이 많다. 난 고등학교때는 다른 과목에 비해 수학을 더 어려워해서 많이 고생했지만, 한결 쉬운 중학교 수학이야 잠깐 책을 펼쳐보고 문제만 미리 풀어가면 일사천리로 가르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과외로 인해 너무 시간을 잡아먹고 (게다가 아버지 몰래 해야 했으므로), 윤진이 입장에서도 시간을 잡기가 곤란했다. 이 모든 걸 솔직히 말씀드리고 제안했더니 아주머니는 준비 없이 막 가르치는 과외 선생 이야기에 놀라셨다가, 고개를 끄덕이시며 말씀하셨다.
"그래, 다른 선생님들은 안 그러는데, 넌 어설픈 선생 조심하라 그러구, 그렇게 솔직하게 말해주니 고맙다. 잘 부탁해, 우리 딸 진짜 3학년 올라가서도 성적 낮으면 예고 못가."
"예고 입시도 성적이 중요하나봐요?"
"그럼. 실기는 따로 시험을 치는데, 지원할때 내신 점수가 중요하거든. 미술학원에서 입시반은성적표 갖고오라 그래서 다 내신 산출해주고 그러는데.......걱정이 많아. 원장선생님이 정 안되면 전학을 가라고도 하거든. 여기는 내신 따기 힘드니까."
"........"
결국 학원은 그대로 다니면서 내가 와서 영어와 시험공부를 봐주기로 했다. 만약 내가 윤진이의 어머니거나 언니였다면 당장 종합반이라도 그만두게 했겠지만, 거기까지는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이를 너무 학교와 학원으로 뱅뱅 돌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윤진이네 입장에서는 아이가 제일 잘 하고 또 하고 싶어하는 게 미술인데, 그걸 전공으로 살려가기 위해서 미술학원에 몇 시간씩 머무르며 그림 연습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 상황에서 최선의 길이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미술학원에다가 과외까지, 부모님의 경제적 부담이 정말 만만찮을 듯 싶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중학생을 한 과목만 가르치는 것 치고는 약간 더 비싸게 페이(pay)를 주셨다. 아, 윤진이 성적 못 올리면 큰일나겠다. 하지만 더 큰 일은, 윤진이의 수업 태도였다.
수업을 할때는 학교건 학원이건, 듣는 사람이 무슨 반응이 있어야 가르치기 수월하다. 물론 학생은 쥐죽은듯이 앉아서 칠판만 바라보고, 교사는 앞에서 재미가 있든 없든 할말만 딱딱 하고 나가는 식의 수업에 익숙해진 선생님이라면야 할 말 없지만, 나는 그런 수업이 정말 싫었고 지루했기에 절대 그렇게 가르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윤진이와 나는 나이 차가 다섯살 밖에 안 나는 데다가 같은 동네에 사니까, 최대한 편하게 언니 동생 하면서 화기애애한 수업을 해 가고 싶었다.
그런데 윤진이는 도무지 말이 없는 아이였다. 영어 문장을 해석해주거나, 공부 요령을 알려줄때 얼굴 표정을 봐도 별 변화가 없어보였다. 언니가 하는 말 이해 가니? 진도 따라가기 벅차? 라고 하면 그냥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니요, 라고 말하는 게 다였다. 하지만 부모님이나 내앞에서는 조용한 반면에 친구들이랑은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왜 윤진이가 선생님 앞에서만 말도 안 하고 소극적일까? 혹시, 그동안 성적이 줄곧 낮았었기 때문에 수업 자체에 흥미를 잃고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는 것도 반은 포기한 상태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뭐라고 해도 반응이 없는 이런 아이를 가르치려다보니 나만 말하느라 목이 아프고,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해도 내가 다 수습을 하고 넘어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성적 올리는 건 고사하고 가르치는 내 자신부터너무 재미없었다. 고1 여학생을 과외하는 다른 친구는, 새 옷이라도 입고가면 '언니 예뻐요~ 소개팅 있어요?' 라고 하고, 꽃미남 이야기 나오면 둘이 같이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정신을 퍼뜩 차리고 다시 수업을 한다던데 나는 꿈도 못 꾸는 이야기였다. 일주일에 두 번 가는데, 수업하는 한 시간 반 동안 윤진이는 안녕하세요와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 밖에 하지 않는 날이 다반사였다. 아는 지 모르는지 질문도 안 했고 그냥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나마 일대일 과외인지라 감히 딴 짓은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여름방학 기간이라서 영어책 한 권을 뛰기로 하고 진도를 열심히 나가던 중이었다. 지난 주에 분명히 풀어오라고 한 연습문제 페이지를 펼쳤다.
".......이게 뭐야? 숙제 안 했어?"
"........"
문제풀이는 고사하고 연필 댄 흔적 하나 없다.
"그때 그때 안 풀어오면 진도 못 나간다고 말했었지?"
"......."
윤진이는 어느새 나를 만만하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자기보다 키도 작고 대학생 나이로 보이지 않는 언니가, 그동안 몇 번 숙제를 안해갔어도 그냥 웃으면서 '시간이 없었다니 할 수 없지, 다음에는 꼭 해와야 돼!' 라고만 하고 넘어갔으니까. 하지만 나 역시 그냥 좋은 게 좋지 한 게 아니었다. 이대로 가면 숙제를 계속 빠뜨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성적이고 공부고 모두 물거품이 되리라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 동안 몇 번 봐준 것은 니가 먼저 정신차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는데, 아직 윤진이의 의지력이 따라오지 못했던 것이다.
"숙제 한 번 안 해 온 것 같고 왜 저러나 생각하지 말고,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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