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나라를 보았니?
  -미디어의 인종차별 부추기기-



다정(http://dajungspace.com)





며칠전,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내 눈이 휘둥그레지는 사건이 하나 일어났는데, 다름 아니라 캠퍼스에서 종종 마주치게 되는 외국인 교환학생들의 모습때문이었다. 물론 학교에서 외국인을 한 두 번 본 것은 아니었고, 특히 기숙사 식당의 경우에는 교환학생들 대부분이 식사하는곳이어서 웬만한 학생들은 옆 테이블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가 난리부르스를 춰도 더 이상불편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무슨일이었냐고?

사실 너무나 간단했다. 저만치에서 친구와 이야기하던 그 외국인 남학생이, 굉장히 생소하게도 '흑인' 이었던 것이다. 마틴 루터킹 자서전을 읽은 이후로 절대 인종 차별적인 사고를 하지 않겠다던 내 결심히 무참히 깨진 것은 하마터면 그 흑인 학생과 내가 눈이 마주칠 뻔해서 고개를 숙여야 했던 그 순간이었다. 그 학생은 이런 동양인 여학생의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주 앉았던 백인 친구와 함께 일어서서 나가버렸다.

그러고나니 민망한 건 둘째치고 너무나 미안했다. 똑같은 사람을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잠깐 바라보는 것은 그 사람이 외국에 온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 많은 교환학생을 스쳐왔음에도, 그 흑인학생은 '피부색이 튄다' 는 이유만으로, 신기한 생각을 넘어서 좀 '깜짝 놀람' 과 동시에 은연중엔 약간의 경계심(!)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범죄자도 아닌데, 남을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피하려 한다거나 싫어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는 큰 폭력이다. 특히 그가 사회적 소수자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아무튼 내 안에 잠재적으로 흑인을 두려워하거나, 피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는 깨달음은 결코 유쾌한 것이 못 되었다. 그런데 문득 또다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왜, 사람은 피부색에 관계 없이 모두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졌던 내가 순간적으로 그를 경계했을까?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어도, 역시 간단한 답이 금세 나왔다.

아닌게 아니라 나는 백인은 숱하게 봤어도 흑인은 도통 만나는 경우가 드물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개인적으로 친구나 친척 중에 외국인이 한 사람도 없었고, 희한하게도 한국에 대해 궁금해서 유학을 오는 외국인 학생들 중 흑인학생은 그동안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었다. 미국이나 유럽쪽의 백인, 아니면 아시아계(주로 일본학생들이 상당하다)가 다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는 내 부끄러운 모습의 인과관계를 가늠해볼수는 없었다.

더 큰 이유가 이거였다. 아무리 다른 나라에 비해 외국인의 거주 비율이 적은 나라 대한민국이라지만, 어떻게 된게 '눈'으로 만날 수 있는 외국인이 죄다 백인이었다. 아침마다 하나둘셋에서 아이들에게 Good Morning~을 말하는 네이티브 스피커 Tommy도 백인 남성이고, EBS English Cafe 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연기를 하는 출연자들도 다 한국인 아니면 백인들이었다(가끔 아시아계 혼혈도 있지만). 게다가 패션잡지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온갖 광고의 모델들은 십중팔구 늘씬늘씬한 백인 미남미녀였으며, 백화점으로 통하는 지하철의 워킹컨베이어 역시 오로지 '백인' 들이 모델로 나오는 명품 광고들만 즐비했던 것이다. 굳이 헐리우드 영화가 온갖 백인들의 잔치이고, 프렌즈와 섹스앤더시티의 멤버들도 죄다 백인이라는 것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동안 무수히 많은 '백인' 들을 접한 대신 흑인들은 이태원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도무지 만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된게 텔레비전 광고에서 미소를 짓는 백인 미녀와 백인 남성은 많아도 흑인이 나오는 광고 중 기억나는 것이 오리온 땅콩강정밖에 없다는 말인가? (그나마 그 흑인 용병 선수가 메인 모델도 아니다)

하긴, 각종 영어교습 프로그램에서 흑인 강사를 고용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 있다. 흑인 영어와 백인 영어가 조금씩 억양이나 구어에서 차이가 나는데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정통 미국식 백인 영어' 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 교육방송만 그러한가? 외국에서 취재를 한 대부분 프로그램에 나오는 인터뷰이들은 죄다 백인 아저씨들인 경우가 많다. 웬일인지 미국의 각료들 중 콘돌리사 라이스와 콜린 파월이 흑인이라고는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 흑인 명사가, 백인 명사에 비해 얼마나 된단 말인가? 부시도 백인이고, 빌 게이츠도 백인이고, 그 들의 주위에도 다들 백인이 넘친다. 그들을 담는 카메라속 필름에는 말할 것도 없다. 성공한 엘리트로서의 흑인을 취재하는데(소수여서 그렇지 분명 있다)우리의 언론들은 참으로 인색하시다.

이렇게 눈으로 '잘난 백인들' 만 꾸준히 접한 한국인들의 생각에서, 흑인을 처음 대면하면 시비는 안 걸지언정 경계심이 드는게 필연적인 현상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생각을 물어보자. 아무리 지금 반미감정이 드높고, 효순,미선양을 탱크로 죽인 군인들이 백인이어도, 신촌일대에서 술을 먹고 깽판을 치다 붙들린 날라리 미군이 백인이라해도 본질적인 백인에 대한 이미지가 변했는가? 그러기는 불가능하다. 미디어에 비치는 백인의 모습은 이렇다. 웬지 럭셔리하고, 유럽이나 미국쪽에서 온 앵글로색슨들이야 부유할 것이고, 멋지고, 똑똑하고, 사회의 중심에 위치한 만큼 품위가 있다! 그에 반해 흑인은 어떻게 묘사되는가? 가끔 킹 목사나 만델라 대통령같은 선구적인 인권운동가 몇몇을 제외하고는, 폭동 보도로 인해 마약하고 싸움 잘하고, 좀 무식하고과격한 돌쇠같고, 인텔리적인 모습은 연상되지 않는다! 이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무리 사람들이 깨여서 인종차별이 잘못된 것이라고 세차게 도리질을 해도, 이렇게 편향적인 미디어의 공세 앞에 백인에 대한 동경심과 흑인에 대한 거리감을 버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

물론 본토 미국의 제일 큰 골칫거리중 하나가 이 인종차별 문제이고, 여성 차별만큼이나 지긋지긋하게도 사라지기가 어렵다. 그런데 한국은 그보다는 상황이 낫지 않은가:? 헐리우드의 웬만한 주류 영화들을 제쳐놓을 정도로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호황기를 맞는 이 시점에서, 사람들은 이제 매체의 중심에 한국인이 서는 데 만큼은 더이상 자기비하를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즐기고 비판할 줄 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흑인들과 동양인들이 상부상조하며 잘 지내는 모습을, 차별 없이 서로를 아끼는 모습을 볼 수는 없을까? 왜 '양키' 들이 주입시켜놓은 흑인에 대한 차별적 사고를 아직까지 사회 전체의 이데올로기로 유지해야 한다는 말인가. 순수 혈통 한민족(사실은 그렇지도 않건만)들께서 별 생각없이 흑인을 향해 우락부락하고 싼 티나고 무식하고 성미만 급한 깜둥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흑인 계 혼혈인들이 속을 끓고 눈물을 흘렸는가 말이다.

이제는 졸업할 때도 됐다. 로버트 할리나 이다도시 뿐 아니라, 지한파 흑인들을 여럿 만나고 싶다. 아시아계 학생과 흑인 학생이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장면도 보고싶다. 그리고 그게, 내가 무심코 경계했던 그 흑인 유학생에게 올바르게 사과하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굳이 미국이나 다른 나라가 먼저 인종 차별을 타파하기 전에,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부터 먼저 생각을 뜯어고쳐서 전 세계 흑인들이 한국만큼은 우호적인 나라라고 인식하게 된다면 또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물론 김선일씨 피살 사건과 이라크 파병 문제로 국제적 이미지가 바닥을 쳤지만.......말이다.) 더이상 한국인들이 '바나나' 라는 비아냥을 듣지 말았으면 하고, 이에 대해 매스컴도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흑인이 화장품 광고하는 것 무조건 망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독특한 점을 노려 대박으로 가라. 그리고, 이제 한국인들은 저도 모르게 묻어갔던 인종차별적 생각을 버리고 (따지고 보면 한국인도 극소수민족 아닌가?) 습관을 고쳐먹어야 할 것이다. 이기적인 백인 아이 마리아 호아키나와 선량한 흑인 아이 시릴로를 모두 감싸안았던 히메나선생님의 모습까지는 당장에 안 되더라도, 시릴로가 흑인이라서 싫다는 마리아의 말에 장미를 뽑아들어서 빨간 장비, 노란 장미, 흰장미, 여러 색의 장미가 있지만 모두 장미이고 또한 모두 아름답다고 말한 미구엘 씨 정도는 본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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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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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sonjo123 BlogIcon 스카이 2007/08/23 1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감탄밖에 나오지 않네요,